넓은 초원에 풀 뜯는 염소들….

여느 목장 풍경이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지방조직 중 하나인 제주전파관리소에서는 지난달부터 염소를 기르고 있다. 돈벌이나 심심해서가 아니라 나름대로 절실한 이유가 있어서다. 지방 전파관리소는 지역의 방송통신행정을 맡고 있다. 방통위가 결정한 정책을 중앙 전파관리소와 그 지휘를 받는 산하 12개 지방 전파관리소가 집행하는 체계다. 올 7월부터는 지식경제부 체신청의 방송통신 인·허가 업무와 인원을 이관받고 통신사업자 및 스팸 발송자 등에 대한 조사단속까지 맡아 명실상부한 지역 방통위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파 이용질서를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임무다. 깨끗한 전파는 u라이프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 전파관리소는 전파탐지가 용이하도록 주위의 전파잡음을 피해 마을이나 시설물이 없는 외진 곳에 청사와 넓은 안테나 용지를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근무환경이 열악한 것은 둘째 치고 용지가 워낙 넓어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 건조기 화재에 대비해 잡초를 제 때 베어내야 하는데, 예산이 만만치 않게 든다. 제주는 특히 바닥이 돌투성이라 작업이 더디고 돌이 튀어 위험하기 때문에 인부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고 있던 차에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냈다. 염소를 풀어 잡초를 뜯어먹게 하자는 것. “관공서에서 염소를?” 하고 다소 부정적인 기색을 보이자 “낡은 생각을 버리라”는 핀잔이 돌아온다. 결국 직원들이 돈을 모아 흑염소 열 마리를 사고 주위의 삼나무를 잘라 직접 근사한 통나무 축사도 지었다. 생각과 힘을 모으는 과정에서 직원 간 화합의 분위기도 더욱 무르익었다. 직원들은 염소를 ‘환경미화 보조원’, 축사를 ‘관사’로 부른다. 환경미화 보조원으로 고용된 염소들은 관사에서 근무지인 풀밭으로 ‘출퇴근’하며 잡초제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산책삼아 염소를 보러 가는 것은 ‘근무상황 점검’이다.

앞으로 염소가 30마리쯤으로 늘어나면 제초제나 사람 손을 거의 빌리지 않고도 잡초를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이며 친환경적이고 직원 화합에까지 도움이 되니 일석삼조인 셈이다. 전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생활에서 공기나 물처럼 중요하게 쓰이듯이, 전파지킴이들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깨끗한 전파환경을 위해 애쓰고 있다. 염소까지 동원해 가면서….

양동모 방송통신위원회 제주전파관리소장 dmyang@kc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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