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환경 관련 무역 규제 정책에 대한 정부나 업계의 인식은 유럽이나 일본의 규제에 비해 낮은 편이다.

유럽이 유럽연합(EU) 차원에서 특정유해물질사용제한지침(RoHS)이나 REACH 등의 규제를 적극 시행하는 데 비해 미국 환경 규제는 중앙 정부보다는 각 주에 그 책임이 분산돼 있다. 또 가장 엄격한 EU의 규제에 기준을 맞추면 미국 등 다른 나라의 규제는 자연스럽게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도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환경과 신재생에너지, '그린 성장'에 관심이 높은 민주당 버락 오바마가 새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 시장에는 새로운 기회와 장벽이 동시에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임박한 미국의 '녹색 전환'을 맞아 단순한 규제 대응의 차원을 넘는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온실가스 감축에 부정적이던 부시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초점을 맞추었던 우리 정부와 기업도 이제 미국 환경·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 방안을 고민할 때다.

◇지구온난화 막겠다=올여름 미국에서는 환경 관련 법안 하나가 전국적인 논란이 됐다. 발의한 의원들의 이름을 따 '리버먼-워너법'이라 불리는 이 법안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19%, 2050년까지 71% 줄인다는 파격적인 내용이다. 배출 상한선을 정해 놓고 초과분은 돈을 주고 구입하는 '배출권 거래 방식(cap and trade)'도 포함됐다.

이 법안은 산업계의 격렬한 반대로 부결됐지만 이 법에 담긴 내용은 조만간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당선자의 공약에 광범위한 배출권 거래 제도를 도입,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80%까지 줄인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한편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환경 드라이브는 압박될 수도=민주당 출신에 시민운동 경험을 지닌 오바마는 환경·노동 문제 등에 관심이 많다. 오바마는 이미 '미국을 기후변화 관련 리더 국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간 교토의정서 가입을 미적대던 미국 정부가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국제적 움직임에 적극 동참한다면 그 파급 효과는 상당할 전망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룰과 국가적 부담 등을 정하는 작업이 급물살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기업에도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의무에 대응할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최태현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정책과장은 "미국 국내 문제가 시급하고 포스트 교토의정서 협상에는 개도국도 대거 참여하고 있어 이산화탄소 감축에 관한 협상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미국이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 대응하면서 우리 부담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2016년까지 신차의 온실가스 배출을 30% 줄이도록 하는 주법을 주도한 캘리포니아주 매리 니콜스 의원이 차기 정부의 환경청장 후보로 거론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녹색 성장은 기회 요소=반면에 오바마가 추구하는 '녹색 성장' 정책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크다. 오바마는 스마트그리드에의 투자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2012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10%를 신재생에너지에서 얻는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또 2015년까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100만대를 보급한다는 목표다.

우리나라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부품업체나 전선 등 전력 기술 업체 등이 수혜를 볼 것이란 기대의 근거다. 또 오바마 측은 단순히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 석유의존도 감소에 따른 에너지 안보 확보 등을 종합적으로 노리고 있다. 오바마 정권 인수위원회의 존 포데스타 공동위원장은 이러한 비전을 '진보적 성장'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캘리포니아를 주목하라

오바마 당선인의 환경·에너지 정책은 이산화탄소(CO?) 배출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와 친환경 자동차 개발 등에 투자, 경제 성장과 고용을 촉진하고 저탄소 청정 에너지 사회로 미국을 변화시킨다는 목표다. '녹색 성장'을 지향하되 '녹색'보단 '성장'에 방점을 찍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면적인 배출권 거래 제도를 도입, 여기에서 생기는 연 150억달러의 자금을 청정에너지, 에너지 효율화, 바이오연료와 친환경차 개발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또 저탄소 석탄발전소와 이산화탄소 포집, 스마트그리드 등 신기술에 대한 투자로 500만개의 '녹색 일자리'를 만든다는 목표다. 이라크전 참전 군인에 대한 녹색 직업 교육도 계획 중이다.?

휘발유 1갤런(약 3.78ℓ)으로 241㎞를 갈 수 있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개발하고 하이브리드 자동차 구매에 7000달러의 세제지원을 해 2015년 100만대의 하이브리드 차를 보급한다. 2012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0%로 끌어올리고 원자력 발전도 확대한다. 빌딩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스마트그리드에 투자한다.?

한편으론 저소득층이나 기존 고에너지 소비형 산업 종사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녹색 전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렇게 공략하라

오바마의 당선으로 미국의 환경·에너지 정책은 변화의 속도를 더할 전망이다. 변화 속에 드러날 기회와 위기의 요소를 적절히 파악해 기회는 살리고 위기는 기회로 바꾸는 유연한 대응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우선 오바마 당선 이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탄소배출권 시장에 대한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 활동에 규제 요인이 되지만 탄소배출권 거래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배출권 경매를 통해 10년간 1500억달러를 모은다는 계획이다.?

정정만 에코프론티어 부사장은 "미국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의 30% 가까이 차지하고 있고 배출권 거래의 기본 시스템을 탄생시킨 곳이라 배출권 거래 방식을 본격 시행하면 탄소배출권 시장이 급격히 활성화될 것"이라며 "그린 경제는 아직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 끊임없이 배워가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전통적으로 강점을 지닌 전력과 전기전자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늘려야 한다. 오바마 당선과 함께 청정 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크지만 미국이 그린 분야에 대한 원천 기술을 가진만큼 향후 기술 분야에서의 압박이 심해질 수 있으리란 우려도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전력IT 등 그린 기술 분야에서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거의 없는만큼, 적극적인 글로벌 협력과 네트워킹을 활용해 그린 파트너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 정부와 협회 등이 나서 그린 관련 콘퍼런스 등을 유칟육성,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선택과 집중'을 통해 '녹색 성장'과 신재생에너지의 핵심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장 동력의 발견을 위해 전략적인 연구개발(R&D)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 원천기술 없이 신재생에너지 보급에만 나서면 부품·소재의 해외 의존이 심해져 경쟁력을 잃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국내 보급을 확대, 시장성을 검증받고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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