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의 역설 중에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스라도 자기보다 앞서 출발한 거북이를 추월하지 못한다'는 궤변이 있다.

실제로 아킬레스가 거북이보다 10배 더 빠르다는 상황을 전제로 하고 10m 앞에서 달리고 있는 거북이를 쫓아간다고 생각해보자. 아킬레스가 10m를 달려가서 원래 거북이가 있던 자리에 가면 그 사이에 거북이는 1m를 가고 아킬레스가 다시 1m를 가면 거북이는 10㎝를 더 나가게 된다. 거북이에 접근할 수는 있겠지만 추월할 수는 없다.

자연계에서 성립할 수 없는 궤변이지만, 우리나라가 기술 선진국을 추격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생각해 볼 점이 많다. 지난 40년 산업화에서 보여준 우리의 지구력과 속도를 아킬레스에 비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본보다 100년이나 뒤졌고, 서구사회에 비해서는 200년 이상 뒤늦은 산업화의 출발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쟁과 최빈국의 불모지에서 경제위기를 극복했고, 이제는 선진국 문턱까지 바짝 다가섰다. 특히 지난 10년간 산업화는 비록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는 비전 속에 21세기 디지털시대를 향해 힘차게 달렸다. 그러나 여전히 미래를 이끌고 갈 원천기술이 없고, 지식사회를 향한 산업의 고도화 또한 부진하다.

디스플레이 산업이 세계시장을 석권했다지만, 원자재·부품·소재의 대외 의존성은 심화됐다. 그 이유는 반도체와 휴대폰을 넘어선 IT 인프라에 관한 핵심 선도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 고속성장 트랙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고 미래산업을 향한 주도권 경쟁에 도전해야만 한다.

첫째, 자원 빈국의 위기를 극복할 신에너지 상용화에 배수진을 쳐야 한다. 21세기 신대륙 쟁탈전이 예상되는 신에너지는 그 어느 분야보다도 가장 치열한 지식재산권 각축이 펼쳐질 분야다. 인류의 생존이 걸린 공동 관심사라는 점에서 더 이상 기초학문과 노하우의 취약함을 탓할 때가 아니다. 연료전지, 수소 저장체 등 새로운 부품·소재는 물론이고 핵융합 기술에 이르기까지 친환경 대체에너지 상용화 기술로 미래기술 선점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둘째, 첨단기술의 융·복합을 통해 부품·소재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과거 스피드 경영에서 도외시되던 취약 분야인 부품·소재산업은 강력한 특허와 노하우로 후발주자의 시장진입이 어려웠던만큼 지금의 시장에서 반전을 기대하기는 매우 힘든 상황이다. 기술의 융·복합에서 파생되는 부품·소재 신기술로부터 경쟁기반을 다져야 할 것이다.

셋째, 지식산업과 서비스산업을 고도화해 새로운 글로벌 비즈니스 트랙을 개척해야 한다. 우리 고유기술의 세계화는 물론이고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신개념 서비스와 지식산업 창출에 눈을 돌려야 한다. 특히 글로벌 표준을 겨냥한 특허권 확보로 시장성 높은 고부가가치 지재권 확보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파급된 경기침체를 맞아 전에 없던 불확실성에 처해 있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오직 치밀하게 준비된 기술획득 전략과 지식재산권 확보를 통해서만 보상받을 수 있다. 필요하다면 아웃소싱과 라이선싱, 기술구매, 기업 인수합병 등 과감한 시도로 최강의 지재권 포트폴리오 구축에 나서야 한다. 과거 선발주자를 뒤쫓던 산업화 트랙의 아킬레스건을 뛰어넘어 미래기술 창조를 향한 도전에 우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할 때다.
최평락 특허청 차장 choepro@kipo.go.kr

저작권자 © NBN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