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대한민국 2014

“나는 ‘어쩔 수 없는 어른’이 되지 않겠습니다.”
가족 모인 체육관에 기성세대 비판 대자보 등장

 

세월호 침몰사고 1주일째인 22일,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군 실내체육관 정문 앞에 손으로 직접 쓴 대자보 3장이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어른이 되지 않겠습니다”로 시작하는 첫 장은 “재난사고 어쩔 수 없었다. 아는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돈이 많이 들어 어쩔 수 없었다. 지위가 높으신 분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내 나라가 대한민국이라 어쩔 수 없었다”로 이어진다.
 이번 사고에 대해 변명만 늘어놓은 정부기관의 모습을 꼬집은 것이다.
 이어 “세월호는 소시민의 거울상이다. 책임을 다한 사람들은 피해를 보고 결국에 이기적인 것들은 살아남았다”며 무책임함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첫 장은 “이 나라에서 내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분하고 억울하다”고 마무리 짓는다.
 둘째 장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번 사고와 관련해 책임을 묻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언급하며 “수많은 사람의 생명이 달린 직업에 1년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게 맞느냐고 먼저 묻고 싶다”로 시작했다.
 또 “몇 백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직업에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사회를 만든 우리가, 1년 계약직 선장에게 책임에 대해 묻는 것은 책임 전가는 아닌지”라며 의문을 던졌다.
 마지막 장에선 “‘세월’ 따위로 이 많은 사람 보내려니 마음이 아려온다. 또 내가 참담한 ‘세월’을 몇 십 년 더 보내려니 착잡한 마음이 끝까지 올라온다. 더 이상의 인명피해 없이 무사귀환 간절히 바랍니다”고 적혀 있다.
 비정규직 문제 등을 지적하고 우리의 책임을 묻는 부분에선 지난해 12월 온·오프라인에서 반향을 일으켰던 ‘안녕들하십니까’를 떠올리게 한다.
 이 대자보는 스무 살의 여성 자원봉사자가 쓴 것으로 실종 고교생 친누나의 친구라고 알려졌다.
 이 자원봉사자는 “동생들이 많이 희생됐다”며 “지금은 책임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단 구조부터 해야 한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글쓴이는 곧바로 친구인 실종자 누나와 함께 팽목항에도 같은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팽목항에는 이 대자보 옆에 실종자의 언니로 추정되는 사람이 써 붙인 또 다른 대자보도 등장했다.
 대자보는 “너를 하루빨리 그 바다 밑에서 구하려고 높으신 분들께 항의하고 울기도 했는데 그분들은 계속 말만 바꾸신다”며 울분을 표현했다.
 이어 “정부 관계자들의 거짓말에 분노해서 청와대까지 가려 했지만 진압당했다”며 “무책임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바다에 갇혀 있게 해서 미안하다”고 적었다. 이 대자보를 읽은 실종자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의 대자보 옆에는 인천하늘고 학생들이 단원고 학생들에게 보낸 편지와 쪽지, 자원봉사자 등이 쓴 글들도 붙어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안익성(51·경남 양산)씨는 “이제 눈물도 나지 않을 유족들과 사고 학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대자보에서라도 마음껏 울분을 토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어떻게 이런 참사가 발생할 수 있었는지 속 시원한 대답을 하루빨리 듣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상연 기자 lsy@busaneconomy.com·일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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