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을 만나다] - (2) 박상대 몰운대성당 주임신부

   

부활의 참다운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 박상대 주임신부
 

부활절을 맞이하여 몰운대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활동을 하는 박상대 신부님께 인터뷰를 요청하여 좋은 말씀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세월호 사고로 인하여 온 국민이 걱정과 슬픔 속에 잠겨있는 이때에 신부님의 말씀은 일종의 복음처럼 마음을 안정시켜 주셨다.

- 이곳 성당에서 바라보는 바다풍경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사실 이곳에서 밑에 보이는 풍경을 보고 있자면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일 다름을 느낄 수 있고 하느님 창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즉 자연을 통하여 하느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 부활절의 이미는 무엇이며 예수님의 죽음과 다시 살아나심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신앙자체가 성립이 안 되며, 복음선포 자체가 헛된 것이 되고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제자들은 두려움에 싸여 있었습니다.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무덤이 비어있었음만 확인했죠. 제자들은 자기들이 만난 분이 죽었다 살아난 분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 신앙을 갖기 시작한 겁니다. 부활의 의미를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 힘듭니다. 제가 볼 때는 새로움을 뜻하는 겁니다. 새로운 지평을 의미합니다. 현실에 몸 담고 있으면서 내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부활은 무관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활의 의미는 두 가지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위에서 보는 부활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었고 인간이 된 예수는 곧 하느님이므로 죽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부활이란 시간, 공간의 주인이시고 이것들을 창조하신 영원하신 분의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사건은 죄와 죽음을 극복하려는 하느님의 시도입니다. 즉 위에서 본 부활은 하느님께서 원래 있던 곳으로 가신 환원입니다. 아래에서 보는 부활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죽으셨고 부활은 그 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I love you.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따뜻함을 불어넣는다(Inspire warmth), 상대방 말을 들어주는 것(listen each other), 마음을 열고(open your mind), 우정을 귀하게 여기고(value your friendship), 신뢰를 표현하고(express your trust), 양보하고(yield good sense), 잘못을 눈감아 주고(overlook mistakes), 다른 점을 이해한다.(understanding differences)

저는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 가르치시던 대학에서 공부했는데 그분은 사랑을 손해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남의 아픔과 손해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덕을 보는 것이 아니고 손해를 봐야 사랑이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사랑을 멋지게 소유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죽음을 이겨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예수님이 보여주신 겁니다.

-참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 각박하지 않습니까?

베네딕토 16세는 사상의 변화를 우주중심- 신 중심- 인간중심- 물질 중심으로 정리하셨습니다. 신의 자리에 인간이 들어서면서 인간은 자기가 만들어 낸 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시작 했는데 이것이 근대주의의 핵심입니다. 물질이 최고, 내가 만든 것이 최고, 그래서 모두가 자기가 최고가 된 세상입니다.

-현대 사회가 물질사회로 이전하는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인데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한국이 특히 각박해 보이는 건 좁은 땅이라 그럴까요?

서양의 명문 대학들은 그 사회의 사상을 주도하고 각 대학마다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학, 법학, 의학, 철학 등이 균형있게 연구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법학, 의학만 최고 대우를 합니다. 신학과 철학이 학문의 기초임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체득, 습득 되지 않은 얄팍한 정보가 공유되면서 우리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3면이 바다이니 내가 챙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북으로 뻗어가야 합니다, 정의구현은 신부가 할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과 위정자가 해야 합니다. 십자가가 있어야 부활이 있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자꾸 내려놓으려 합니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부지런하고 똑똑해서 급속성장한 덕분에 한국의 위상이 강화되었지만 ,여전히 돈돈하며 열심히 살다가 돈 좀 벌어놓고 나면 병에 걸려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인 인간미도 사라지고요. 이런 흐름 자체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또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할 위정자들이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이런 면에서 외관상의 발전이 사상누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국회의원들과 위정자들은 정보를 활용할 줄을 아는데 옛 선비의 미덕인 인과 의가 없습니다. 보이는 것하고 보이지 않는 것, 삶과 죽음을 공유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공유한다는 것은 약간 손해를 보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가 그 부활을 믿을 수 있게 하는 소통의 중재자가 바로 성령입니다. 우리도 물질과 사람, 자연을 대함에 있어 소통이 필요한데 그게 없다고 봅니다. 많은 정보를 공유하면서도 소통은 안되고 있는 상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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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생뚱맞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각자의 신은 많은데 세상(사람)은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위에계신 분들 즉 신들께서 별로 세상에 대하여 신경을 안 쓰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신은 변론하지 않고 신학자들이 한다. 신이 있다면 부조리와 모순이 왜 극복이 안되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에 대한 답은 본인이 고통을 스스로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고통을 없애려고 하기 보다는 고통을 넘어서려합니다. 불편함과 고통을 안고 사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믿는 만큼 하나님이 존재합니다. 위에서(하느님) 어떻게 해 주지 않느냐 하시는데 이미 많이 다 하셨습니다. 더 이상을 바라는 건 우리 욕심이고 하나님을 또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하느님과 소통하면 됩니다.

- 신부님께서는 글을 많이 쓰시던데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한국에서 교직에 있다가 미국에서 여러 해를 지냈어요. LA에 살았는데, 교민들이 거의 다 종교를 가지고 있고 주말은 종교와 가족중심으로 생활을 하고 삽니다. 주말종교행사에 참석률도 높고 학교에서 활동으로 인정도 해 줍니다. 저녁 8-9시 이후에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게 종교의 영향이죠. 그런 종교적 영향력 때문인지 미국 현지의 한국 언론사들이 인터뷰 요청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대부분의 신부님들은 인터뷰를 별로 안 좋아하셨는데 저는 기꺼이 응했습니다. 5년 체류 후 한국에 와서 교구청 사무처장직을 맡으면서 언론과 교류가 많아져서 인터뷰나 칼럼을 많이 썼죠.

-저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영향력 많으신 성직자들이 좀 더 세상일에 나서주실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맞는 말씀이지만 저희가 나서면 욕을 먹는 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의구현사제단의 경우, 그들 나름대로의 정보를 가지고 정의를 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대형사건이 있을 때마다 개입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강의도 하고 여러 악기를 가르치기도 하고 교사 교육도 합니다. 천주교 사제들은 정주하면서 각자 맡은 소임을 다하게 되어 있는데 사회적으로 나서서 활동을 하다보면 소임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겠죠

세월함 사건으로 온 사회가 침울한 이때에 몰운대성당 박상대 신부님과 무려 2시간 가까이 대화하면서 마음의 참 평화를 얻었다. 절대적으로 연약할 수밖에 없는 우리인간이 어떠힌 마음자세를 가지고 살아야하며 하느님과 인간 간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끔 이끌어 주신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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