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소개] - 거문고

   
박혜신
국립부산국악원 연주단 단원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전수자

거문고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의 제 모습이 변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역사성을 가진 악기로 모든 악기의 으뜸이라는 ‘백악지장(百樂之丈)’의 호칭을 얻었다. 특히, 그 소리가 깊고 장중해 학문과 덕을 쌓은 선비들의 애호를 받으면서 독주와 합주, 반주 음악에 빠지지 않고 쓰였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악지(樂志)」에는 거문고의 생성과 초창기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처음으로 진(晉)나라 사람이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에 보냈는데, 고구려 사람들은 비록 그것이 악기인 줄은 알았지만 성음이나 연주법은 몰랐다. 당시 제이상(第二相)이었던 왕산악(王山岳)이 악기의 본 모양을 그대로 두고 법제(法制)를 개량해 새 악기를 만들었으며, 겸해서 일백 곡을 지어 연주했다. (중략) 그래서 새로 개량한 악기를 현학금(玄鶴琴)이라고 이름지었는데, 후에는 다만 현금(玄琴)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는 설화적 기원에 불과하다. 1932년 지안현[輯安縣]에서 발굴된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악기의 그림이 발견됨에 따라 거문고는 진나라 이전의 고구려에 이미 그 원형이 있었다는 설이 유력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 거문고는 오동나무 몸체 뒤에 밤나무와 같은 단단한 나무로 뒷판을 댄 울림통을 갖고 있다. 그 울림통 위에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6줄, 16개의 고정된 괘와 세 개의 안족이 있다. 가야금과 달리 거문고 연주자는 술대(匙)로 줄을 타현하기 때문에 독특한 음색의 묵직한 소리를 낸다.

거문고의 줄 속에는 음양이 숨어있다. 즉, 거문고의 줄 6줄 중에서 첫 번째 줄과 여섯 번째 줄은 각각 문현(文絃)과 무현(武絃)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문무(文武)가 한 쌍을 이루고 있고, 네 번째 줄과 다섯 번째 줄은 괘상청-괘하청으로 아래위로 짝을 이룬다. 또한 주로 선율을 연주하는데 사용되는 두 번째 줄 유현(遊絃)과 세 번째 줄 대현(大絃)은 각각 얇은 줄과 두꺼운 줄로 구성되어 맑고 가벼운 소리와 둔탁하고 듬직한 소리로 음양의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현재 거문고는 정악과, 산조, 창작곡, 관현악곡에 두루 쓰이고 있다. 그러나 거문고는 다른 국악기의 발전에 비해 그 음악적 비중과 역할이 많이 축소되고 있다. 최근 음량과 음역을 개선한 개량거문고가 만들어졌으나 개량가야금처럼 활발히 사용되고 있지는 않다.

현대에 이르러 국악 창작 활동이 급속화되면서 서양의 작곡기법 및 음악어법을 수용해 새로운 시도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서 유구한 세월 동안 당당했던 거문고의 자존심은 점차 무너져 가고 있다. 특히, 국악관현악에서는 전통합주에서 가장 중시되었으며 동시에 충분한 역할을 해 왔던 거문고의 독창적인 소리가 전혀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악의 대중화가 피할 수 없는 숙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서구화를 추진하면 오히려 우리 음악 발전에 저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하겠다. 물론 급변하는 문화의 흐름과 대중들의 서구화된 감성은 무시될 수 없으며, 전통성과 정통성을 유지하면서 현대인의 오감을 채워 줄 수 있는 대중성 확보 방안은 거문고 연주자들이 풀어야 할 과제임도 분명하다.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며 가볍게 흔들리지 않는, 선비의 기개가 담긴 거문고!!!

다른 악기에 비해 음량이 크지 않고 음색이 화려하지 못한 거문고가 옛 선비들 사이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은 거문고에서 나오는 품위와 웅장함, 소리의 여백에서 오는 무언가가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거문고의 악기적 특성이나 연주 수법, 특징을 발견하여 독창적인 생명력과 장점을 잘 살린다면 긍정적 효과를 가질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악기라고 믿는다.

대중들에게 쉽지 않은 음악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민족의 깊은 정서를 잘 담고 있는 거문고 소리는 앞으로 국악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중에게 친숙한 소리로 조금씩 조금씩 다가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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