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교자 권신찬의 외동딸과 결혼
1981 기독교복음침례회 교단 구성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 해운의 실제 소유주가 유병언씨로 밝혀지면서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가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구원파의 창교자이자 유씨의 장인인 권신찬(1996년 사망)씨는 1923년 1월 경북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에서 출생했다. 해방 후 그는 남산 총회신학교를 졸업하고 1951년 11월 목사 안수 받았다. 1962년 12월 경북노회로부터 장로교 목사로서 침례를 받고 또 교인들에게 재침례를 허용했다는 이유로 목사면직을 받았다.

1966년 2월 인천에 있던 복음주의방속국(현 극동방송국) 전도과장에 올랐으나 1974년 9월 10일 교리 문제로 극동방송국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1969년 대구에서 평신도복음선교회를 만들고 방송국에서 ‘은혜의 아침’ 프로그램을 통해서 특유의 사상을 펴서 말썽이 되기도 했다.1981년 12월 기독교복음침례회 교단을 만들고 총회장으로 의사인 변우섭을 선출해 정식 출범했다.

현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실질적인 대표인 유병언은 1941년 2월 일본 도쿄에서 출생했다. 일본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대구로 부모와 함께 이주해 대구 공고를 졸업했다.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6개월 코스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권신찬과 칠성예배당을 차리고 전도하던 중 권신찬의 외동딸과 결혼했다. 1967년 서울시내 대학생 중심으로 ‘조이선교회’를 만들고 방송청취자를 결속해 서소문에서독립교회를 시작했다.

1983년 유병언이 신앙과 사업을 연계해 헌금을 사업자금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권신찬과 유병언은 더욱 사업확장에 주력했고 막대한 사업자금을 교인들의 헌금과 사채로 충당했다.

1987년 8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주식회사 오대양 식당 천장에 32명이 집단 변사하는 소위 ‘오대양 사건’이 벌어졌고 이 배후에 기독교복음침례회와 유병언이 관련되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이후 많은 이탈자들이 생겨나 교세가 크게 위축되었으나 아직도 교회를 유지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구원파의 교리는 사람이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으면 양심의 모든 죄책감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하는 거짓말이나 육신적인 죄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원은 영이 받았으므로 육으로 하는 것은 관계치 않으며 한번 깨달았으면 다시 범죄도 없고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며 생활에서 짓는 죄는 괜찮다고 강조한다..

사람이 일단 구원을 받으면 기도는 필요없다.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일을 맡은 지도자만 할 수 있다. 영적 성장 과정은 교회에서 하는 것이며 개개인이 할 일이 아니다. 때문에 교회가 사생활의 구심점이다.

이번 세월호 사건도 신앙과 직장을 연계한 구원파의 독특한 교리가 한 몫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지원 소장은 “구원파는 기독교복음침례회 외에는 구원이 없고 목사는 목사가 아니라 형제이며 재정은 인도자가 장부없이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으며 교파나 간판이 필요 없으며 예배는 성도간의 교제로 기도는 구원받은 사람에게 필요 없다고 가르친다”고 밝혔다.

권신찬은 초창기부터 사위 유병언을 ‘성령에 의해 세움을 받은자(기름부음 받은자)’라고 추켜세웠다. 구원파는 1973년, 1984년 9월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됐다.
이상연 기자 lsy@busan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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