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삶의 가치관을 지켜내는 순수함에 대한 찬사
화면 비율을 넘나들며 시각의 극대화 이끌어

   
 

웨스 앤더슨은 영화를 만들 때마다 독특한 공간과 이미지를 구성해왔다. 작년에 개봉한 ‘문라이즈 킹덤'에서 지도에도 없는 마을을 만들더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주브로브카공화국이라는 가상의 나라까지 창조했다.
앤더슨은 동유럽의 국가를 창조하면서 양차 대전 사이에 유럽을 휩쓴 파시즘과 나치즘, 자유의 실현이라는 역사 속의 선명한 주제를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삶과 교직시키고 있다.

묘지에서 시작하는 영화의 이미지가 위대한 작가의 흉상, 동명의 소설 표지, 그 글을 쓴 작가의 얼굴로 이어진다. 노작가는 소설이 허구라기보다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주변 세계의 조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무덤-흉상-소설-얼굴의 이미지는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본격적인 이야기의 세계로 접어들고, 발화되는 말을 통해 현재인 1985년과 1968년이라는 과거, 1932년의 유럽으로 자유롭게 넘나들게 된다.
이 도입부는 앤더슨의 창작에 대한 원천을 밝힘과 동시에 사실을 어떻게 영화적 세계로 구성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요약하고, 그의 영화가 말하고 보여주었던 가로지름의 미학을 압축하고 있다.
특히 횡축으로 움직이면서 공간을 구성하고 각 부분들이 전체적인 조화나 불일치를 이루는 방식을 드러내거나 좌우의 완벽한 대칭적인 공간을 설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대전과 나치의 대두(1932년), 청년운동이 유발시킨 혁명의 기운과 실패(1968년)라는 역사적 사건을 가로지르고, 목소리와 이미지의 사용을 통해 인물들을 유연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앤더슨의 중요한 테마인 소년의 모험담이 한층 두터워지면서 어른보다 성숙한 10대 소년, 물리적인 나이는 들었지만 내면적으로 미성숙한 어른들의 성장, 세대를 뛰어넘어 전수되는 가르침의 형태로까지 나아간다. 제로라는 난민 소년은 츠바이크가 난민으로 떠돌던 나치의 시대를 떠올리게 만들고, 브라질로의 도피가 결국 그의 자유에 대한 열망과 어려운 시대를 함께 관통하지 못함에서 오는 자괴감을 이겨낼 수 없었음을 상기시킨다. 영화 속의 모든 인물은 츠바이크의 삶을 조금씩 드러내면서 캐릭터로서의 모험 또한 수행하는 셈이다.  
이 영화는 세대와 이야기 구조, 인물들 뿐 아니라 화면의 비율까지도 미끄러지고 넘나드는 형태를 실험하고 있다. 1968년은 당시 유행하던 2.35:1의 비율(와이드스크린), 영화에서 중심이 된 사건이 일어나는 1932년은 1.37:1, 1985년은 1.85:1(스탠더드)이라는 비율로 구성되기 때문에 화면비율의 차이점이 역사와 영화 제작의 형태, 화면의 구도에 이르기까지 시각이라는 감각을 가장 극대화시킨 경험을 제공한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소년 제로가 늙은 귀부인들과 사랑에 빠지는 사교술로 호텔을 번창하게 만든 전설적인 매니저와 만나면서 이들은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루어간다.
살인사건과 추격의 과정을 흥미롭고 유쾌하게 다루고 있지만, 결국 앤더슨이 이 영화에서 주목한 것은 삶의 습관과 가치관을 물려받고,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더라도 지켜나가는 것에 대한 소중함과 어떤 순간에서건 용기를 잃지 않는 순수함에 대한 찬사가 된다.
미니어처의 사용과 스톱 모션 촬영, 아기자기한 소품의 활용, 파스텔 계열의 색깔을 사용해서 화사하게 표현한 사랑스러운 분위기와 검은색이 주를 이루는 나치즘의 횡포, 회색 군복을 입은 동유럽의 군인들은 가장 아름다웠던 19세기 말의 세계부터 국가가 해체되고 나치에 의해 조각난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을 드러낸다.
앤더슨은 모든 요소들이 제자리에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정교한 하모니의 세계와 카오스에 가까운 난장판의 세계를 넘나들고, 질서와 무질서를 서로 교환시키면서 역사와 실존 인물이 영화와 캐릭터로 스며드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조금씩 나이가 들수록 냉소보다는 온화한 미소로 변해가는 앤더슨의 다음 작품이 더욱 기대된다.

   

     박인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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