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유진
국립부산국악원 단원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이수

 대금은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악기인 三絃(거문고, 가야금, 향비파) 三竹(대금, 중금, 소금) 중의 하나이다. 대금의 자는 원래 속이 꽉 찼다는 뜻으로 ‘함’이라고 읽어, 원래는 대함이라 읽지만 지금은 대금이라 통용되고 있다. 순수 우리말로는 대금을 ‘큰저’ 또는 ‘젓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금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들은 여러 역사서에서 나타나는데 이 중에서 『삼국유사』 만파식적(萬波息笛)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전한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신라 30대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려 감은사를 짓다가 이를 마치지 못하고 승하하자 바다의 용이 되었다. 그의 아들 신문왕이 왕위에 올라 개요 2년(서기 682)에 역사를 마쳤는데,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금당의 계하에 동쪽을 향해 구멍 하나를 뚫어 두었다. 그 후, 문무왕이 죽어서 된 해룡과 김유신이 죽어서 된 천신이 합심해 용을 시켜서 대나무를 보내니, 그 대나무로 젓대를 만들어 월성에 있는 천존고에 보관했는데, 이 젓대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비가 오면 개이며, 바람은 가라앉고 물결도 평온하여 졌다. 그래서 이 젓대를 이름 하여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하고 국보로 삼았다.
 이 같은 기록으로 보아 그 당시에는 세상의 모든 파도를 잠재우게 한다는 뜻으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이름 짓고 신기로서 취급했던 기록을 엿볼 수 있다.
 대금은 가로로 잡고 부는 횡적(橫笛)관악기로 하나의 취구(吹口)와 청공(淸孔), 여섯개의 지공(指孔), 칠성공(七星孔)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공에는 청(갈대 속의 얇은 막을 채취해 말린 것)을 붙여서 연주하는데, 대금에서 청을 붙이는 작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청의 울림은 다양한 음악성을 구사하고 표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금은 대나무 중에서 황죽(黃竹)이나 쌍골죽(雙骨竹)으로 만드는데,『악학궤범』에는 여러 해 묵은 황죽으로 만든다고 했으나, 현재는 쌍골죽(雙骨竹)을 주로 사용해 만든다. 쌍골죽이란 양쪽에 골이 패인 일종의 병죽으로  대나무의 내경이 두텁고 단단해 맑고 야무진 소리가 나기에 널리 쓰인다.
 대금에는 정악 대금과 산조 대금이 있다. 정악 대금은 궁중 음악과 줄풍류 연주 및 가곡 반주 등에 쓰인다. 청아하면서 장쾌한 소리가 특징이다. 정악 대금으로 연주하는 대표적인 독주곡으로는 <청성자진한잎>, <상령산>, <경풍년> 등이 있다. 산조 대금은 산조나 시나위, 민요반주 혹은 굿 반주 등에 쓰이는데 정악 대금보다 길이가 짧아 음고가 높다. 산조 대금으로 연주하는 대표적인 독주곡으로는 <서용석류 대금산조>, <원장현류 대금산조> 등이 있다.
 대금은 이처럼 천년을 이어 내려오는 신묘한 악기이며, 한민족의 맥을 잇는 천년의 혼을 머금고 있다. 세상의 근심걱정을 달래고 화평하게 했던 청아하고 장쾌한 소리로 다시금 세상의 시름을 잠재우는 악기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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