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옥
  부산시향 제1바이올린 수석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고유한 인간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는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단순하게 사회성만 부각시키자면 무리지어 생활하는 다른 동물들도 있기에 인간만의 독특함을 자랑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인간은 음악적 동물이다’라고 하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기에 우리 주변에 인간처럼 음악을 하는 동물들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세상의 진기한 일들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에서 음악에 맞춰 춤추거나 노래하는 듯이 보이는 동물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것은 일종의 훈련 결과이거나 동물들의 특이한 버릇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말 음악을 느끼고 즐기며 생산해내는 동물들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음악’을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악을 ‘감성의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계산보다는 인간의 정서적 측면을 강조하여 발전된 예술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오랜 연주 경험을 가진 저로서는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편적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음악은 손쉬운 예술이 아닙니다. 그저 자리만 잡고 앉아서 귀만 열어놓으면 모든 사람이 쉽게 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의 길이 열리는 예술이 아닙니다. 누구든 어떤 음악이라도 귀를 통해 들어오면 곧바로 이해가 되고, 즐기게 되는 그런 유의 것이 아닙니다. 클래식 음악을 예로 들자면,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이 난해하다고 느낍니다. 편하게 듣기에 불편하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런 불평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음악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도의 계산과 판단 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선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음악은 모든 것이 준비된 계산입니다. 특히 독주를 할 때보다 여러 명이 함께 연주를 하는 오케스트라에서는 보다 정확한 계산과 판단을 필요로 합니다. 그저 겉으로 보기엔 현란한 연주자들의 기교를 통해 듣기 좋은 음악이 나온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음악이 있기 위해서는 쉼 없는 계산과 판단이 함께 해야 합니다. 따라서 음악 뒤에 있는 그런 세밀한 계산에 대한 ‘선 이해’가 없다면 음악은 어렵고 골치 아프게 느껴지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음악보다 클래식에 접근하기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그 이유는 클래식 뒤에 숨어있는 세밀한 수학적 계산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거나 덜 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음악은 예술의 영역에 속해있기 때문에 다른 학문들처럼 책상 앞에서의 공부를 통해서만 그 계산의 법칙을 터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복해서 듣고, 설명을 찾아보고, 공을 들여 확인해야만 음악의 참 맛을 알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죠.

서구의 대학 전통에서는 교양학부에서 가르치는 7가지 기초 과목 중에 음악은 쿠아드리비움(Quadrivium)에 속했습니다. 이는 ‘네 개의 길’이란 뜻으로 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그리고 음악이 여기에 속했습니다. 이렇게 서구인들은 음악의 수학적 특성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들 차세대의 교육에 있어 음악을 중요하게 자리매김했습니다. 사람을 논리적으로 만들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만들기 위한 실용적 분야로서 음악은 매우 요긴하고 훌륭한 도구였던 것입니다. 끙끙거리며 수학공식을 외우고 셈을 하지 않아도 악보에 적힌 화음을 따라가며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우리는 수학적 세계를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음악이 인간의 정서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논리적, 수학적 특성까지 아우른다는 점에서 인간을 규정짓는 여러 말 가운데 ‘호모 무지쿠스’(homo musicus), 즉 ‘음악 하는 인간’은 인간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명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은옥
(부산시향 제1바이올린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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