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 1890년대의 부산 개항장

▲ 3장 :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만 펑펑 나구요.

고려환의 웅장한 선체가 무대 상수 쪽부터 밀고 들어와 거대한 후경으로 자리잡았다. 고려환 선상에 선 김택 1, 2 형제.

김택 1 : 여기가 앞으로 우리가 경영할 식민도시 부산이다. 저 백사청송 해안을 매축하여 은행올 세우고…
김택 2 : 어리석은 조선인에게 고리채 못 갚으면 저당된 땅을 몰수할 것.
김택 1 : 군수와 내통하여 이권을 획득하고,
김택 2 : 해운업과 어장권을 확보한다.
김택 1, 2 : 식민지 개척정신으로-. 도쪼께끼!

펑! 퍼퍼펑! 축포 터지는 소리와 함께 고려환 선상에서 좌르르 선창요로 늘어뜨려지는 형형색색의 면포들, 지리맨, 인조견 등 각종 상품명이 적혀 있고 정찰 가격표가 붙었다. 슬금슬금 모여드는 아낙들, 신기하고 매료된 모습들이다.

김택 1 : 도쯔께끼!

펑! 퍼퍼펑! 두 번째 축포 발사와 함께 배 옆구리 문들이 활싹 열리며 왜상들이 쏟아져 나온다. 저마다 사탕. 양파자, 화장품 .술 등을 한아름씩 들었다. 왜상1, 양과자와 사탕을 공중에 뿌린다.

아이들 : 사탕이다! 양과자다!

아이들 함성을 지르며 달려가 줍는다. 왜상 2, 화장품을 들고 아낙들 속으로 들어간다.

왜상 2 : 오늘은 개업 첫날. 공짜요 공짜!

왜상 2, 화장품을 나누어 준다. 기성올 지르며 달라붙는 아낙들의 손, 손들.

김택 2 : 도쯔께끼!

선상에서 핑크빛 불꽃과 포그가 터지면서 선정적인 기모노 차림의 왜녀들이 손을 혼들며 트랩을 달려 내려온다. 무대에 내려서면서 간드러지는 사미센. 그리고 술병 든 왜녀들의 술 빚는 노래와 춤. 장정들이 하나 둘 겸연쩍은 표정으로 모인다.
왜녀들, "하이,도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스미마생-"해 가면서 술을 권한다. 온갖 아양과 교태가 장정들의 혼을 뺀다. 무대 전면은 왜색 상품 무제한 방출로 흥청거린다. 왜색조 노래가 고려환 배 스피커에서 계속 흘러나온다. 장정 아낙 아이들 할 것 없이 정신을 잃고 몰려다닌다.

김 택 1: 자,이제 건설이다. 새로운 우리의 미래도시를 향해 도꾸다이!
와-하는 함성이 선상에서 일고 텐노헤이까 반자이! 하는 외침과 함께 달려 내려오는 노무자 차림의 날렵한 왜인 장정들. 한 무리가 무대 하수 쪽에 넓게 선올 긋는다. 무대에 있던 왜인들이 잽싸게 물건올 던지며 같이 달려들어 낮은 성벽을 쌓는다. 또 한 왜인이 무대 상수 끄트머리에서 은행 건물 전면올 밀고 나온다. 남은 왜인들이 달려들어 잽싸게 기둥을 세우고 건물 모형올 고정시킨다. 김택 형제 선상에서 내려온다. 무대는 일순 긴장감으로 정지된다.

김택 1 : (성벽을 가리키며) 일본국 부산 거류민단 본부.
김택 2 : (은행을 가리키며) 제일 국립은행 부산지점.
왜인 세 명이 꾀를 쑥 내밀고 주판알을 굴린다. 조선인들 이때서야 정신올 차리고 가마솥을 중심으로 모인다. 오완근과 박우점 일어선다.

   
 

 김택 2 : 요정.

왜녀들이 성벽 앞에 자리를 깔고 흥등을 깜박 켠다. 김택 1, 2 객주 평상으로 온다.

김택 1 : 신장개업 인사가 늦었습네다. 우리는 오사까 주우 재벌과 제휴, 신도시 경영인설턴트를 조선국으로부터 취득(면허장을 펴보이며) 청운의 뜻올 품고 내부한 가네자와 형제입네다.
김택 1, 2 : (허리를 구십 도 각도로 숙이며) 도죠-요로시꾸 오네가 이시마스-

오완근, 박우점 난감해진다. 무대 불이 천천히 꺼지면서 배경으로 남는 일본 국가.

▲ 4장 : 삼천리 강산 넓기는 해도 너와 나 갈 곳이 어디매고

경주댁 객주 명상 초롱등을 켠다. 경주대 개다리소반 술상을 명상에 올린다.

오완근 : 경주댁도 이리 오르소. 같이 한잔 나눕시다.
경주댁 : 일없소.
박우점 : 아 날래 오르라우. 에미나이 동무 없이 술맛이 나갔소.
경주댁 : 쪼그랑 할마이 앉혀 놓고 저승갈 계획 짤라요?

경주댁  웃으며 형상에 오른다. 돌이도 쪼르르 따라 오른다.

박우점 : (경주댁 엉덩이를 툭치며) 아즉 방뎅이 살이 포실포실한 거이 애새끼 열도 더 퍼질러 놓갓다.
경주댁 : 아이고, 고기 배 따먹고 살다보이 나잇살을 까먹었고만.
오완근 : 저승갈 계획이 아이라 초량 고방 문닫을 계획 짜야될 거 같다.
박우점 : 거 무시기 소리가.
오완근 : 쪽바리들 노는 꼬라지 볼작시면 조선 객주들 도산이야.
박우점 : 정신 바짝 차리라우. 항간에 떠도는 노래가 다 사실적으루 드러나고 있디 않갔소.
경주댁 : 인천 제물포 살기는 좋아도 왜놈의 등쌀에 못살겠네, 이 노래 말이오?
박우점 : 함경도 원산이 살기는 좋아도 쪽바리 등쌀에 못 살갔다, 이런 노래도 있디.
오완근 : (막걸리를 들며)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만 펑펑 나구요.
오완근, 박우점 : 요내 가슴도 타는데 연기도 김도 없구나.
경주댁 : (숟가락장단) 에 에헤 에헤랴.
오완근, 박우점 : (술잔을 들며) 어여라 난다 디여라.
경주댁 : 허송세월을 말어라.

박우정 호방한 웃음.

이때부터 오완근,박우첨, 경주댁의 음울한 노랫가락, 밤 객주 평상에 펼쳐진다. 느릿한 어깨춤과 숟가락 장단도 곁들여-.

오완근 : (목청을 쭉 뽑으며 박우점 어깨룰 안는다) 삼천리 강산 넓기는 하지만 너와 나 갈 곳이 어디란 말인가 에-.
박우점 : 아바이 에미나이 어디 갈까 북간도 벌판이 좋다던가 에-.
경주댁 : 설백 월백 천지백하니 요내 간장은 얼음판이로다 에-
돌이 : (동요조로 끼여든다) 쪽바리 똥구녁 나발 똥구녁  나발한테 불다가 코가 깨져서 병원에 갔더니 안 고쳐 주기에 경찰서에 갔더니 뺨대기만 맞고 집에 와서 생각하니 분해 죽겠네.

일동 웃는다.

오완근 : 그래, 니 노래가 그래도 제일 낫다. 나발 똥구녁을 확 쑤셔버려야 속이 시원할 텐데 그럴 힘이 없다 아이가 힘이.

이때 무대 상수 뒤 소방서 망루에서 다급하게 종이 울린다. 이어, 개짖는 소리. 평상의 일동 술이 번쩍 깨면서 뒤돌아보는데 어둠을 찢는 조선 여자의 비명과 함께 무대 상수 쪽 뒤편에서 뛰어나오는 복면 쓴 왜인 서넛. 일본도를 번뜩이며 무대 하수 쪽으로 가로질러 뛴다. 허리춤에 조선 여자 하나씩 꿰어찼다.

오완근 : 저, 저놈 잡아라!

이때, 소년 복원이가 어깨에서 피를 흘리며 소방서 망루에서 내려온다. 대창을 들었다.

복원 : 누나야-누나야-.
돌이 : (달려간다) 복원아-.
복원 : 우리 누나야 쪽바리 새끼들이 훔쳐갔다. 우야노, 이 일을 우야노, 돌아.

복원, 돌이를 붙안고 운다. 오완근과 박우점이 달려가고 개짖는 소리 드높아진다.

경주댁 : (돌이에게) 빨리 소방서 종이라도 쳐서 동네 사람들올 깨와라.

돌이 망루로 뛰어올라간다.

경주댁 : 사람들아 나와 봐라- 일났다, 동네 일났다 이 사람들아-.
반응이 없다. 돌이 종을 친다. 다급한 종소리.

경주댁 : 야이 쓸개 빠진 인간들아- 개도 나와 짖는데 와 인간이 안 보이노. 죽창이나 부엌칼이라도 들고 나온나.

이때서야 슬금슬금 눔치보며 상수 쪽에서 모습을 비쭉 드러내는 마을 장정, 아낙들.두려운 눈빛이다.

오완근 : 왜놈 부랑배들이 마을 처녀를 잡아갔다. 어서 경찰서에 연락하고, 전부 다 나온나. 이놈의 자석들 왜관 구석구석을 이 잡듯 훑어서라도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복원 : (어깨를 붙안고) 우리 누나 찾아주이소, 예. 엄마 구포장에 가고 집에 아무도 없슴니더, 우리 누나야 찾아주이소.
오완근 : 가자. 지금 바로 왜관으로 쳐들어 가야 처녀애들 몸 안 망친다.
장정 3 : 무섭소. 왜놈들은 육혈포를 들었단 말이오.
경주댁 : 아직 이씨왕조 법도가 살아 있는데 총칼을 함부로 못 놀린다.
아낙 1 : 그 법도 내려앉은 지 오래 안 됐소.
오완근 : 그렇다믄, 우리 힘으로라도 싸워야제. 이대로 먼산 불 보듯 가만 있으라 말이가?!
박우점 : 자기 에미나이 도둑 맞았다 하믄 가만들 있갔소? 나 목숨만 챙길라들 말고 같이 가자우.
                                                                                                                                         <계속>

                                                                                          이윤택
                                                                                          30년을 구상한 역작
                                                                                          부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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