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문턱에서]

   

김향미
화가

부산에는 그리움이 있는 빨간 우체통이 있다.

산꼭대기까지 다닥다닥 따개비처럼 집들이 붙어있는 하늘 닿은 부산산복도로에서 빨간 우체통이 부산을 환히 내려다보고 있다. 시인의 설레이는 사랑의 기다림과 아픔의 시가 그리움으로 붉어져서 빨간 우체통에 담겨져 있다. 언덕에서 여행자들은 자신과 누군가에게 엽서 한 장의 마음을 우체통에 넣는다. 일 년이 지나 지금의 기대와 사랑과 기다림의 시간이 포개어진 엽서를 받게 된다. 낯선 여행지의 이방인으로서 인생의 한 부분에 기다림의 숙연한 의식을 치르는 기분마저 들게 된다. 이것은 이 언덕에 오면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빨간 우체통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지키는 하나의 조형물로서 시인의 마음이 겹쳐진 설레이는 기다림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유치환 선생의 그리움의 시간이 우체국으로 이어지는 발걸음이 된 것처럼, 그의 사랑의 편지들은 이제 모든 이의 가슴에 적혀져 그리움이 있는 빨간 우체통으로 향하게 되는 발걸음이 된 셈이다. 그리고 여행자는 시인의 마음처럼 파아란 하늘밑에서 기다림에 부푼 갯바람이 연보라 빛깔을 띠우며 다가옴을 틀림없이 보게 될 것이다. 언덕을 향한 발걸음은 그리움의 시와 그리움의 사람과 지나간 그리움의 역사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리움을 품은 여행자로서 찾아간 우리는 언덕에서 유치환선생의 시처럼 부풀은 연보라 빛 갯바람과 파아란 하늘을 바라보며 설레게 되고, 김민부 시인의 가곡처럼 파도와 물새소리에 기대어 아파하는 마음을 견디며 <기다리는 마음>을 느끼게 된다.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의 여생이 보여주듯 쓰리고 아픈 상처를 병 고침 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 근현대사의 역사적 장소인 부산산복도로에서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함께 보여주고 들려주었던 그들의 인생과 흔적처럼 남겨진 역사를 ‘이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삶에서 이루어내려는 기대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이 사회가 이루고자하는 이상에 대한 명제를 일깨워주며 길 위에서 우리에게 다시 물어 온다. 발길들을 반기는 볼거리와 마련해 놓은 이야기 거리는 각자의 삶 뿐 만이 아니라 사회가 지녀야하는 이상적인 가치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근사한 만남을 준 셈이다. 마치 시인이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우체국 앞을 서성이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러한 그리움으로 문화적 자취들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산복도로에 서 있는 빨간 우체통과 그들의 자취인 시와 노래와 풍경들은 기대를 품은 견딤과 기다림이 길러낸 것이며 몇 사람의 씨 뿌림이 시작이 되어 일구어져 쌓여온 것들임이 분명하다. 문화는 몇몇에 의해서 싹을 틔울 수는 있다. 그러나 몇몇에 의해 일구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행자들이 한 발걸음씩 스스로 찾아 와서 보고 묻고 답하는 여로의 과정은 각자의 삶에 교양이 됨과 동시에 사회 속에서 견디고 경작되어져야할 문화라는 밭을 이루게 된다. 잘 일구어진 밭에는 기다림과 견딤의 댓가로 풍성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열릴 것이다.

문화란 공공인식과 개발에 따라 끊임없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으로 이루어진 숙성의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그 언덕에서 고인들의 자취가 이제야 부산의 문화라는 정체성에 하나의 상징성으로 자리하게 된 것처럼 우리는 또 다른 자취를 기대하고 만들고자 꿈꾸면서 그리움을 가지고 기다려야만 한다. 언덕을 오르는 여행자에게 빨간 우체통은 진짜 그리움의 우체통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나는 빨간 우체통에 들리는 발걸음을 무심히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기다림의 견딤을 잘 치러내고 있는 것인지 언덕에 서서 나를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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