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주 내부고발 없으면 유병언 역할 규명 어려울 둣

지난 1997년 부도가 난 세모그룹이 10년만에 부활하는 과정이 통상적인 방법과는 달랐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유병언(73) 전 회장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 ‘편법승계 의혹 사건’의 판례에서 볼 수 있듯이 유 전 회장이 개인주주에게 권리를 포기하라는 지시 또는 압력이 있었다는 명시적인 ‘내부 고발’이 없으면 그의 민·형사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공산이 크다.

8일 유 전 회장과 관련된 회사들 자료에 따르면 1997년 세모 부도 직후 사업 부문을 인수한 회사들의 주요 주주는 초기에 개인 투자자로 구성됐다가 2008년 지주회사 체제로 바뀌었다.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 세모, 아해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들 회사는 세부적인 부분은 조금씩 차이 나지만 ‘개인주주→주주 권리·이익포기→지주회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유 전 회장 일가의 영향력이 높아졌다.

청해진해운은 2007년까지 유 전 회장과 관련된 인사로 추정되는 개인주주들이 10% 미만의 지분을 소유했지만 2008년 자본금 7억5천만원을 증자하면서 천해지(19.27%), 아이원아이홀딩스(9.39%)가 1,2대 주주로 새로 등장한다.

세모 역시 2008년 1월 기존 개인주주 3천879명이 주식을 일시에 무상소각하고 유 전 회장 일가와 관계가 밀접한 다판다, 새무리, 문진미디어가 발행된 신주의 80%를 차지한다.

아해는 개인 주주 30여명이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다가 2008년 아이원아이홀딩스가 최대지분(44.8%)을 차지한다.

제3자 배정방식의 신주발행은 아니지만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재무제표를 보면 기존 주주의 주식 39만여주를 액면가(5천원)에 취득한다.

이들 회사가 지주회사 체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기존 개인주주가 주주로서 자신의 이익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전 회장이 모종의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되는 부분이 이 대목이다.

회사의 재정상황에 따라 불가피하게 이런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적게는 수십명부터 수천명의 주주를 설득시킨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롭게 회사의 주요 주주가 되는 투자자가 불과 10년전 부도의 책임자인 회장 일가 또는 측근이라는 점에서 개인주주의 권리포기 배경에 대한 의혹이 증폭된다.

현재 검찰 수사의 칼끝이 유 전 회장을 향한 만큼 그와 계열사와의 직접 관계를 밝히는 것에 수사의 성패가 달렸다.

검찰로선 ‘은둔의 실소유주’로 의심받는 유 전 회장이 이 승계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물증이나 진술이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룹 오너의 ‘직접 경영 책임’을 밝히는 것은 만만치 않다.

이는 13년에 걸친 삼성그룹의 ‘편법승계 의혹 사건’의 판례에서 잘 나타난다.

특검은 기존 주주가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실권해 장남 이재용씨가 저가로 CB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의 개입을 밝히려 했지만 “기존 주주의 실권은 스스로 판단한 것”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2009년 이 회장이 배임 혐의를 벗었다.

반대로 이 때 실권한 주주였던 제일모직[001300]의 소액주주가 이 회장을 상대로 낸 민사재판에선 2012년 2심까지 “이 회장이 실권과 저가 CB발행에 명시적·암묵적으로 지시했다”는 취지로 원고 일부 승소판결이 났다.

이를 고려하면 세모그룹도 유 전 회장이 개인주주에게 권리를 포기하라는 지시 또는 압력이 있었다는 ‘내부 고발’이 있어야 그의 민·형사 책임이 분명해질 전망이다.

또 삼성그룹의 경우 실권한 주주가 법인이어서 결정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가 있었지만 세모그룹은 개인주주의 ‘내심의 의사’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가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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