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준
  부산대학교 기계공학부

세월호 참사를 무기력하게 지켜보면서 끝없는 분노와 절망에 빠져든다. 이번 참사의 경위가 1993년의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와 거의 유사하다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사고의 모든 과정에서 그 때보다 더욱 퇴보한 최악의 참사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 사고조사가 진행중이라 뭐라 단언할 수 없지만 이번 참사는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난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합법적이라 하지만 무리한 선박 증개축, 상상을 뛰어넘는 화물 과적과 형식적인 규제, 무모한 운행, 허울뿐인 관제 및 사고신고 체계, 해경이 보여준 상식 이하의 초기대응, 선장과 선원의 살인에 가까운 무책임성, 구조과정의 전문성과 리더쉽 부재, 일부 언론에 의한 혼란 및 갈등 증폭,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우리사회에 존재할 수 있도록 토양을 제공한 물질만능주의와 부정부패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직도 피해자 가족이 진도체육관에 담요를 깔고 숙식하며 구조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보면서 또 다른 분노를 느낀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보듬는 태도와 역량이 이것 밖에 되지 않는단 말인가? 게다가 사고수습에 참여한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하며 또 한번 절망에 빠진다. 우리 사회가 뻔히 예견할 수 있는 2차 사고를 일으켜 그 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이후 21년간 1인당 국민소득은 3배 이상 증가했는데 안전의식과 재난대응능력은 21년 전 보다 더 퇴행하지 않았나는 의문이 든다. 몸집은 커졌는데 의식수준은 더 나빠진 것이다. 부패한 구조에서 과적과 안전규정 위반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이번 침몰사고로 나타났으며, 사고 대응과정에는 해운회사의 무책임성과 정부재난관리의 비전문성이 사건을 더욱 악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 배경에는 사회전반에 만연된 안전의식 부재, 위험 불감증 및 제도화된 부패가 자리 잡고 있다. 서양이 150년간 이루어온 근대화와 산업화를 우리나라는 불과 50 여 년만에 경이적인 압축성장으로 따라왔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와 함께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직면하게 되었는데, 풍요는 즐기면서 위험에 대한 대비는 게을리 했을 뿐만 아니라 응당 했어야 할 안전규제 대신 구조화된 부패가 자리 잡은 것이다.

안전의식 부재와 부패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 목숨 보다 돈 벌기에 급급한 의식구조가 곳곳에 배어있다. 이번 참사의 전개과정을 곱씹어 보면 그 흔적이 역력하다. 제도개선이나 인사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전반적인 의식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일상화된 불법이 너무나 많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대형건물의 비상구가 창고 비슷하게 사용되는 일은 다반사이고, 교통신호 위반과 과속은 비일비재하며, 화물과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 규제기관은 부정을 적당히 눈감아 주고 이를 먹거리로 활용하여 부패구조를 만들어왔다. 물질만능주의가 더욱 강해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21 년전의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보다 질적으로 더 나쁜 참사가 발생할 수 있겠는가?

또한,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위험에 대해 심각한 불감증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가 하루 평균 약 15명, 자살사망자가 40여명, 산업재해 사망자가 하루 평균 3명 등 믿기 힘든 숫자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전국민이 일상적으로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위험하다고 인식하지 않고 있으며 정부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듯하다. 예를 들면, 20 일 마다 300명씩 교통사고로 사망해도 국민과 정부는 물론이고 언론 조차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야 말로 정말 위험한 것이다.

갖가지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안전문화”가 한 층 퇴보했다. 사람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생산목표나 효율 보다 안전을 더 중시하는 풍조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다.

아무 죄 없이 세상을 떠난 300여 명의 희생을 망연자실 바라만 볼 수는 없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우리나라를 한 단계 발전시켜야 한다. 사고 수습이 끝나는 대로 이번 사고의 책임소재를 가려 엄중하게 문책하고 합당하게 보상해야 한다. 부패의 먹이사슬을 완전히 척결해야 하며, 관련된 정부 조직과 제도는 골수까지 개혁해야 한다. 또한, 정부의 일반행정 책임자가 재난관리 책임자가 되는 후진성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사고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물질만능주의에서 인본주의로, 권위의 시대에서 책임의 시대로, 관료 사회에서 전문가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바탕에 도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을 달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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