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녀 (시인)
 

선장은/ 단숨에 고층 건물 뛰어 넘고/ 배의 엔진보다 힘이 더 세고/ 구명삭 발사총보다 더 빠르고/ 바다 위를 걸으며/ 하느님에게 지모를 준다

수석 일등 항해사는/ 단숨에 작은 건물 뛰어 넘고/ 배의 발전기 보다 힘이 더 세고/ 구명삭 발사총만큼 빠르고/ 잔잔하면 바다 위를 걸으며/ 하느님께 말을 건다

차석 일등 항해사는/ 바람을 등지고 달리면 작은 건물 뛰어 넘고/ 배의 발전기만큼이나 힘이 세고/ 던진 히이빙 라인보다 더 빠르고/ 바다 위를 겨우 걸을 뿐/ 가끔 하느님께 말을 건다/

항해사는/ 간신히 작은 건물 비켜 가고/ 윈치로 줄달리기에 지쳐 버리며/ 히이빙 라인을 던질 수 있고/ 헤엄을 잘 치며/ 하느님 마음에 들기도 한다/

이등 항해사는/ 작은 건물 뛰어 넘으려다 무너지고/ 앵커 윈치에 힘이 달려 지는 수도 있고/ 다치지 않고 히이빙 라인을 다룰 수 있고/ 개헤엄을 치며/ 혼자 말을 한다/ 문 앞 층층대에서 넘어지고/ 기차를 보면 칙칙폭폭 좋아하고/ 장난감 권총을 갖고 놀고/ 진흙 웅덩이에서 뒹굴고/ 동물에게 말을 건다/

갑판장은/ 높직한 건물을 들어 올리고/ 그 밑을 걸어간다/ 예선도 대지 않고/ 배를 잔교에서 밀어 떼어 낸다/ 발사석을 이로 물어 잡고/ 한번 눈을 흘기면 바다는 얼어 붙고/ 입을 다물고 있다/ 갑판장은 하느님이다

인용한 가사는, 대항해 시절부터 구전되어 온 뱃사람들의 노동요입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는 세계를 지배한다’는 영국의 명언처럼, 거친 자연을 상대로 투쟁하는 바다 사나이들의 성실함과 위대함이 드러나 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노동요 가사는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부서의 임무를 그대로 노래합니다. 파도가 뱃머리에서 부서지거나 폭풍이 마스트를 꺾어도 뱃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애씀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뱃사람에 대한 느낌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월호의 승객들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을 믿고 따른 것. 뱃사람에 대한 강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노래 가사 속의 ‘건물을 뛰어 넘고, 바다 위를 걸으며, 힘이 세고, 동물에게 말을 걸며, 한 번의 눈 흘김으로 바다가 얼어붙고 입을 다물게 하는, 그러다가 마침내 하느님이라고까지 호칭하는 선원들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큰 능력을 지닌 직업군이 또 있겠습니까?

운명이라 부르기엔 당신들의 죄가 너무나 큽니다. 사고를 인지하고도 재빨리 구조를 요청하지 않은 죄, 침몰하는 배에서 퇴선을 명령하지 않은 죄, 수많은 승객을 죽음의 늪으로 밀어 넣은 죄 등등은 미필적고의를 가장한 학살이었습니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의 눈부심과 해풍을 타고 비상하는 바닷새의 부드러운 날갯짓과 갯냄새 흔건한 바다의 추억을 심연 깊이, 흩어지게 한 만행. 안전항해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많은 뱃사람들의 자존심을 뭉개고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선장과 승무원이 승객을 보호하지 못하고 본인들 살기에 급급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화가 솟구칩니다. 학생들이 침몰하기 직전 보내온 동영상을 보았습니까? 움직이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구명복을 입은 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진정 보았습니까? 왜 당신들의 선택을 그리하였습니까? 빈소에는 조문이 이어지고 있지만 나는 슬픔을 감당하지 못할 분노의 행렬을 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승객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침몰하는 선실에 갇힌 채, 애타게 부르던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까? 간절하고 절박했던 그 시간에 당신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씨맨쉽을 저버린 비열한 탈출이 슬픔과 슬픔을 만들어 커다란 트라우마를 낳고 있는 이 천 십 사년 사월입니다. 대한민국을 덮고 우주를 덮고 있는, 비탄에 젖은 비명소리의 절규는 화석으로 영원히 남아, 우리 모두 살아있음을 오랫동안 미안하게 할 것 입니다.

나는 한국을 떠나 잠시, 인도네시아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곳 인도네시아 무덤가에는 하얀 깜보자꽃 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세월호 구조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이 시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멀리서나마 파도꽃으로 떠난 영혼들의 영전에 하얀 깜보자꽃을 바칩니다. 오늘은 적도의 석양도 검붉은 핏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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