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를 여행하는 몇 가지 방법

   
 
   
 

가끔씩 산토리니를 ‘잘’ 여행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그리스 산토리니는 작고도 큰 섬. 걸어서 섬 전체를 둘러보자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그 곳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음에 자유롭고 효율적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렌터카를 선호하기도 한다. 물론, 나도 딸아이 손양과 도착 후 삼 일간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의 작은 소형차를 렌트했었다. 그러나 나도 손양도 렌터카를 이용하여 여행하는 방법에는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깐 ‘우리 취향’이 아니었던 거다. 결국, 렌트한 승용차를 하루정도 써 먹은 다음, 이런 저런 핑계를 대서 같은 숙소에 머물게 된 다른 여행자에게, 선심 쓰듯 자동차 열쇠를 건네주고 말았다. 그리고는 걸었다. 푸른빛을 머금은, 그러나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따가운 햇살을 온 몸에 받으며 걸을 수 있을 만큼만 걸었다. 그리고 자동차로 그 섬을 돌아다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깊숙하게 섬의 풍경을 음미 할 수 있었다.게다가 굼벵이보다 더하게 느린 걸음의 여행자인 아이와 함께라면 느림의 절대미학을 온 마음으로 껴안을 수 있게 된다.

가끔은 느리고 불편한 여행이 빠르고 편리한 여행보다 더 행복하고 더 풍요롭게 다가오는 곳이 있는데, 산토리니 섬도 그런 여행지 중의 한 곳이었다. 느리게 여행하다 보니 산토리니 섬이 마음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여유롭지만 게을러 보이지 않고, 활기차 보이지만 들떠 보이지 않으며, 반복된 리듬이 계속되는 것 같지만 지루하지 않은, 미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섬으로. 느리게 여행해서 좋은 것은 수많은 에피소드와의 만남이 주어지는 점도 있다.

손양과 묵던 산토리니의 숙소 앞에 사륜 바이크 렌탈샵이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수나! 수나!’내 이름을 부르며 반색을 하던 주인아저씨. 겁내하며 바이크를 타지 않겠다는 나에게 바이크 대리 운전까지 해 주던 그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의 반색과 호의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그의 자연스러우나 어쩐지 의도적인 듯 한 스킨십이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가볍게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기도 하고, 은근슬쩍 수다를 떨다가 내 손을 잡기도 한다. 안을 듯이 허리를 감싸 안았을 땐, 나도 모르게 몸을 빼며 인상을 썼었던 것 같다. 급하게 그와의 수다를 마치고 도망치듯 가는데 손양이 놓치지 않고 물었다.

“엄마! 그 아저씨가 엄마를 만져서 싫어요?”“엉? 어? 언제 아저씨가 엄마 몸을 만졌다고! 그런 거 아냐~” 그러는 내 목소리는 우습게도 떨렸고, 되묻는 손양의 목소리는 다부지고 또랑또랑했다.

“엄마가 인상을 앙! 하고 쓰면서 아저씨가 얘기할 때 웃지도 않던걸?”“아냐! 그런 거 아니라니깐~”나는 계속 손양에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니라고만 했었다.

“엄마! 엄마는 아빠 말고는 다른 남자가 엄마를 만지면 싫은 거죠?”“…….”“엄마! 싫은데 왜 싫어요! 하지 않아요? 싫으면 싫다고, 하지 말라고 해야 하는 거잖아요!”더 이상 ‘아니다’라고만 얘기해서는 안 될 것 같았고,어쭙잖은 변명을 손양에게 했었다. “그래, 네 말처럼 그 사람이 엄마 어깨를 만지는 것이 싫었지만, 그게 이 사람이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고, 우리나라와 그리스는 환경이나 사람들의 생각, 행동이 많이 다르잖아! 우린 그냥 안녕하세요? 인사하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뽀뽀하면서 인사하잖아! 그래서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어. 지금도 잘 모르겠고!”“엄마! 그래도 싫은 건 싫은거예요. 나도 다른 사람이 엄마 몸을 만지는 것은 싫어요. 그러니깐 다음에는 하지 마세요! 하세요. 엄마가 안 하면 내가 할 거예요. 우리 엄마 만지지 말아요! 하고요~”

산토리니를 여행하는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솔직하게 여행하는 방법’이다. 이 일을 겪고부터, 이후의 여행을 계속하면서 부딪치게 되는 사소한 남녀관계, 사람관계에 있어서 나는 분명한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 그 나라의 풍경과 문화 색을 온전히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한다. 나와 다른 너를 받아들이고 너와 다른 나를 이해시키는 그런 것. 그것이 또한 우리가 여행하는 목적 중의 하나임을 어린 손양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산토리니 피라마을의 꼭대기에 올라가면 그 아래 올드포트까지 580개의 계단이 놓여 있다. 그 계단을 오르내리는 방법 역시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걷거나 나귀를 타거나 텔레페릭(곤돌라 리트프)를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그 곳을 여행하면서 생각나는 또 다른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손양이 아니었다면 나는 텔레페릭을 타보지 못했을 거다. 산토리니 꼭대기는 바람이 제법 거세었다. 그 곳에 간 첫 날 바람 때문에 텔레페릭은 운행을 하지 않았다. 나는 곤돌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그렇다한들 크게 아쉬운 일도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손양은 바람처럼 살랑대듯이 내게 말을 건네 왔다. “엄마! 오늘은 바람이 덜 불어요. 곤돌라 타러 가자!”

무슨 일을 해야겠다는 계획이 없던 우리의 여행은 마음 내키는 대로 발을 내딛으면 되었기에 그러자며 손양과 함께 꼭대기까지 다시 설렁설렁 올라갔었다. 손양 말대로 곤돌라 리프트는 운행을 했었고 에게 해 바다로 빠질 듯 내려가는 곤돌라의 빠른 속도감은 이것을 안 타보았으면 어쩔 뻔 했나,손양 네 덕분이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들 만큼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러니, 여행은 때론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손양 같은 아이들처럼 하고 싶은 것은 꼭 해보아야 하는. 손양의 그 ‘집요함’ 때문에 피라 꼭대기 텔레페릭 탑승의 놀이기구를 타는 듯 한 신나는 경험 뿐 아니라 올드 포트에 도착했을 때 이미 떠나버린 배를 되돌릴 수 있는 ‘힘’의 경험도 맛보게 되었다.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간발의 차이로 놓쳐버린 배는 그 배를 꼭 타야겠다는 계획도 없었던 우리를 태우기 위해, 되돌아와 주었다. 그리고 그 배를 타고 5시간의 환상적인 액티비티로 채워진 산토리니 인근의 화산섬 투어를 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산토리니의 속살 같은 여행의 즐거움을 맛 볼 수 있었던 것은 느린 속도, 솔직함, 집요함 때문이었고 그러한 여행의 기술은 손양, 바로 아이를 통해서 배워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산토리니 섬을 ‘잘’ 여행하는 몇가지 방법의 답이기도 하다. 녹색희망(박선아 블로거) http://blog.naver.com/psa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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