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종 음원사이트에서 ‘그런 남자’라는 신인가수의 노래가 정상을 차지하면서 젊은 세대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음원차트 정상을 대형기획사 소속의 아이돌들이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그와 관련이 없는 신인가수의 노래가 1위에 올랐다는 점은 작은 화제거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실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근본적인 이유는 노래가사가 일부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된장녀’와 다르게 대부분의 한국 여성을 비판 또는 비하하는 개념인 ‘김치녀’를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가수가 여성비하 등 사회적 물의를 많이 일으키고 있는 모사이트의 회원이며, 노래가 발표된 직후 한 여성가수그룹에 의해 여성의 입장에서 남성을 비하하는 패러디 노래인 ‘그런 여자’가 등장한 점도 이 노래가 논란의 대상이 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김치녀’는 데이트나 결혼비용 등을 남성에게 전적으로 전가하며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한국 여성을 지칭하는 신조어이다. 보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명품만 좋아하고 이기적이며 남성을 ‘물주’로 생각하는 여성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여성을 비하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향상에 따른 남성의 박탈감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즉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남성이 그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서 데이트나 결혼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해왔으나 여성의 지위상승으로 우월적 지위를 상실하게 된 남성들이 여성비하라는 악감정을 표출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여성들의 지위향상은 전문직을 중심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사법시험, 외무고시, 행정고시 등 각종 국가시험에서 여성이 수석합격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합격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이다. 실제로 2013년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중 여성의 비율은 40.2%이고 5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합격자 중 여성의 비율은 46.0%로 나타났다. 한편 대학진학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높아서 2012년 기준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74.3%로 남성 68.6%보다 높다.대학진학률의 성별역전은 2009년부터 발생하였으며 그 격차는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또한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인 고용률의 경우에도 20 10년부터 20대 여성이 남성을 앞지르는 성별역전 현상이 나타났으며, 2013년에는 여성 57.8%, 남성 56.8%인 가운데 그 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여성의 약진과 성별역전 상황을 볼 때 잘못된 방식이지만 ‘김치녀’로 대변되는 청년층 남성의 감정표출 현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타당한 듯 보인다. 특히 20대 청년 남성층의 경우 고용 없는 성장에 따른 일자리 부족을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으며, 데이트나 결혼 등의 남녀 간 비용부담 문제에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체감 정도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이 비정상적으로 박탈감을 표출할 만큼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향상되었을까? 남성으로서 오랜 기간 동안 여성의 경제활동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는 필자의 의견은 ‘그렇지 않다’이다. 이전보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향상된 것은 분명하지만 ‘김치녀’로 표출될 만큼 그 정도는 크지 않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다. 이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3년 성 격차(gender gap) 보고서’를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이에 따르면 한국의 성평등 순위는 조사대상국 136개국 중 111위이며,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치녀’논란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경제분야에 한정해서 살펴보더라도 여성의 지위는 매우 열악하다. 2013년 기준 여성의 고용률은 48.8%로 남성 70.8%에 비해서 매우 낮다.임금의 경우 2012년 기준 5인 이상 사업체의 여성 월평균임금은 195만 8천원으로 남성의 68%준에 불과하다. 더욱이 근로조건이 좋은 대기업에서 여성의 고용여건은 더 안 좋은 편이다. 1000명 이상 상장 대기업에서 정규직 중 여성의 비율은 21.5%에 불과하여 5인 이상 사업장의 여성상용직 비율 33.9%에 비해서 낮다. 임금의 경우에도 1000명 이상 대기업의 연봉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서 1.56배 많지만 5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1.47배 높은 수준이다.

이상을 통해서 볼 때 남성이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어서 소폭의 향상을 빌미로 이전과 다르게 여성의 경제적 의존성에 대해서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또한 여성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분명히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동일하게 남성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남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양성평등사회의 출발점은 역지사지에 근거한 의식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최근에 한 노래로 확산된 ‘김치녀’논란이 이를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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