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이것부터 고치자] - (4) 안전위협 하는 기본 규정만이라도 바꿔라

21년전 서해훼리호 문제점 그대로 노출
연안여객선은 낡고 오래된 ‘시한폭탄’
여객선사 공공지원, 안전관리 강화 절실

 

‘4·16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는 선사와 선원은 배가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일반상식에 가까운 기본 규정들이 지켜지지 않는 탓에 ‘후진적인 인재(人災)’ 난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21년 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와 비슷하다. 서해훼리호가 남긴 기본에 가까운 교훈만 잘 지켰어도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서해훼리호는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면 앞바다를 운항하다가 침몰, 292명이 사망했다. 악천후 속에 정원(221명)을 훨씬 넘은 362명을 태우고 출항했다가 회항하려고 배를 돌리다 운항 미숙으로 침몰했다.

서해훼리호 선체 합동조사반은 1993년 11월 내놓은 ‘서해훼리호 전복 침몰사고 조사 보고서’에서 “선박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과적·과승에 대한 엄격한 행정지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월호도 구조변경을 하면서 한국선급이 권고한 사항을 지키지 않고 화물을 과적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는 선미에 여객실을 증설하면서 한국선급으로부터 복원성을 유지하기 위해 화물과 여객을 줄이고 선박 평형수를 늘리라는 주문을 받았다. 여객실 증설로 무게가 187t 늘었고 무게중심이 위로 0.51m 높아져 복원력이 저하됐다. 한국선급은 선박평형수를 370t에서 1천700t(출항기준)으로 늘리고 여객을 포함한 화물적재량을 2천525t에서 1천70t으로 줄여 복원성을 유지하라고 했다.

그러나 세월호가 화물을 규정보다 더 싣고 선박평형수는 덜 실었다는 정황들이 합동수사본부 조사에서 나오고 있다. 세월호를 관리감독해야 할 한국해운조합, 해경,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연안여객선은 낡고 오래된 ‘시한폭탄’과 다름없다고 입을 모은다.

부산항 연안여객선 3척은 모두 선령이 20년을 넘겼다. 세월호 참사가 나자 해경 등 관련 기관들이 지난달 25일부터 부산항 연안여객선들을 특별 안전점검한 결과 비상훈련, 인명구조장비, 차량과 화물 고정상태 등 40가지 문제점이 발견됐다.

부산과 제주를 오가는 카페리 2척 가운데 서경파라다이스호(6천626t·정원 613명)는 선령이 27년, 서경아일랜드호(5천223t·정원 880명)는 선령이 21년이다. 부산항 연안을 오가는 누리마루호(358t·정원 278명)은 1988년 일본에서 지어져 26년이나 됐다.

세월호 참사가 나자 해경 등 관련 기관들은 지난달 25일부터 나흘 동안 부산항 연안여객선들을 특별 안전점검했다. 사실상 예고된 점검이었는데도 비상훈련, 인명구조장비, 차량과 화물 고정상태 등에서 40가지 문제점이 쏟아졌다.

서경아일랜드호는 16가지 지적을 받았다. 일부 선원이 비상상황이 생겼을 때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구명정 하강훈련 때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구명정 탑승에 필요한 승객용 사다리가 잘 펼쳐지지 않았고 구명정까지 이동경로를 알려주는 표시가 부실했다.

서경파라다이스호에서도 비슷한 14가지 문제점이 나왔다.

특히 선박 블랙박스인 VDR이 오작동했다. 화물을 체인 대신에 밴드로 고정, 한쪽으로 쏠릴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부산항내를 오가는 누리마루호도 비상상황 때 개인별 임무 숙지 미흡, 비상훈련 매뉴얼 부실, 객실∼비상탈출구 유도표시 미흡, 타기실 천장 누수 같은 문제점 10가지가 드러났다.

부산과 일본을 오가는 국제여객선들도 노후화가 심각하다. 부산∼일본 4개 항로에 7개 선사가 여객선 13척(카페리 4척, 쾌속선 9척)을 운항하고 있는데 선령이 20년 이상인 선박이 8척(61.5%)이나 된다.

세월호 사고로 문제점들이 지적되자 해수부는 여러 예방 대책을 내놨다.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 구성, 여객선 승선권 발권 전면 전산화, 여객선 안전운항관리 업무 한국해운조합과 분리, 여객선 정원 늘리는 구조변경 금지, 여객선 블랙박스 탑재 의무화 등이다.

1급 항해사만 대형 여객선 선장을 맡도록 하기로 했다. 비행기 조종사처럼 선장도 주기적으로 적성심사을 받게 하고 탈락하면 퇴출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해양전문가와 해운업계 관계자 등은 이런 뒷북 대책보다 기본에 충실한 안전관리 강화와 근본 대책 마련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현겸 팬스타라인닷컴 회장은 “일본에서 20년 넘게 운항한 중고선박을 우리나라 연안여객선으로 도입하는 관행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일본은 선사가 새 배를 지으면 80% 이상을 공기업에서 대출해 준다. 정부가 연안여객선사 지원에 나선다면 선박 선령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며 “선사는 스스로 승객 안전관리와 선박 관리, 승객과 화물 체크 등을 강화하고 관련 기관들은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해운전문가는 “연안운송업체가 대부분 영세해 억지로 비용을 줄이려 하다 보니 노후 선박 도입, 전문성 떨어지는 인력 채용, 선박관리 부실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연안운송의 공공성을 인정하고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연 기자 lsy@busaneconomy.com·일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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