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지수, 미국 지표 호조·우크라 긴장 ‘추락’
전문가 “원화 환율 3분기 1,000원 붕괴 가능성도”

   
지난 8일 오후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울 명동에 있는 한 환전소 앞을 지나고 있다.

최근 미국 달러화가 약세국면을 이어가면서 1년 7개월여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달러화 약세를 두고 예상을 뒤엎은 것이라며 ‘수수께끼’에 빗댔다. 지난해만 해도 세계 금융시장에선 미국이 통화긴축 정책에 나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경기의 조기 정상화를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달러화 약세는 당분간 지속할 공산이 커졌다.

이는 이미 달러당 1,000원 근처까지 내려간 원화 환율이 900원대까지 추가 하락하는 데 압박을 줄 것으로 보인다.‘

◇ 예상 밖 달러화 약세 ’수수께끼‘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유로·일본 엔·영국 파운드·캐나다 달러·스웨덴 크로나·스위스 프랑 등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산출한 ICE 달러지수는 지난 8일(현지시간) 78.906까지 내려갔다.

이는 2012년 9월 이후 19개월여 만의 최저치다.

이날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서도 1유로당 1.3993달러로 2011년 10월 이래 최저 수준을 보였다.

시장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올해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 만큼 최근 달러 약세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블룸버그 조사에서 세계 주요 금융기관 전문가들은 달러지수가 올해 6월 말 82.9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달러화를 찍어내 자산을 사들이는 양적완화 규모 축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전망 속에 양적완화 종료 후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지면 통화 긴축에 따른 달러 강세는 자연스러운 순서로 예상된 것이다.

그러나 달러지수는 심리적 저항선인 80선 아래에서 맴돌고 있고 최근 전문가들의 6월 말 전망치는 80.7로 지난해 말보다 크게 낮아졌다.

심지어 이달 초 발표된 미국의 4월 고용지표가 호조를 보였고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국제적 긴장감이 고조됐음에도 달러 가치가 하락하자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9일 “달러화에 대한 유일한 컨센서스(합의)는 컨센서스가 없다는 것”이라며 달러 약세를 ’수수께끼‘에 빗댔다.

에릭 스타인 이튼 밴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피난처로서의 국채 수익률 반등이 달러화 반등이 아닌 달러화 매도세로 이어지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라며 “기본적인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달러 약세 배경에 대해 예상보다 더딘 미국 경제의 회복세는 물론이고 고수익을 노린 캐리 트레이드(싼 통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나라의 시장에 투자하는 것)에서 중국의 외화보유액 강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한스 레데커 세계 통화전략 책임자는 “중국이 미국 국채를 사들이면서 수익률이 낮아졌기 때문에 달러화가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조달 통화로서 매력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동양증권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비관론이 존재하고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에 차이가 있어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철희 동양증권 연구원은 “가파른 실업률 하락으로 영국 중앙은행은 연준보다 먼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며 일본은 추가 금융완화 정책을 펴기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며 “이는 미국이 조기 금리 인상에 나서 달러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 이들에게 충격”이라고 지적했다.’

◇ 달러 약세 추세 지속…원·달러 환율 ‘세자릿수’도 달러 약세는 당분간 쉽게 전환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 경제의 정상화 속도가 기대만큼 빠르지 않고 금리 인상에 정해진 시간표가 없다는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의 최근 발언도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어줬다.

정경팔 외환선물 연구원은 “미국 연준의 두 가지 목표 중 고용은 달성됐지만, 물가상승률은 그렇지 않아 금리 인상 환경이 되지 않는다”며 “금리 인상 시기로 내년 중반이 예상되지만, 미국 경제가 내년까지 정상화하기 어려우므로 2016년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정혜 신영증권 연구원은 “양적완화 축소가 종료되고 금리 인상에 대한 논의가 나와야 달러가 힘을 받을 수 있다”며 “3분기까지는 현재 분위기가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티븐 잉글랜더 씨티그룹 주요 10개국 외환전략 책임자는 블룸버그에 “아주 확실한 무언가가 없다면 연준과 싸울 수는 없다”며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꼬집었다.

달러 약세 전망으로 5년 9개월 만의 최고 수준에 도달한 원화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원화는 주요국 통화 중 달러화 대비 절상률이 가장 높은 수준이며 조만간 세자릿수 환율이 가능하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등 한국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 요인 외에도 달러화가 대부분 국가의 통화에 대해 약세인 현재 기조를 유지한다면 원화의 추가 강세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홍정혜 연구원은 “달러 약세가 원화에 추가 강세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원화는 현 수준을 유지하다가 3분기엔 달러당 1,000원 가까이 갔다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경팔 연구원도 “달러 약세가 지속하면 원화가 더 강세 분위기로 갈 수 있다”며 “달러당 1,000원까지는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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