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설연휴가 끝난 다음날인 지난 1월 28일. 국내 은행 중 최대 규모의 거래량을 자랑하는 농협의 차세대시스템인 ‘신용신시스템’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로써 지난 2005년 5월 컨설팅을 시작으로 첫 삽을 뜬 농협 신시스템 프로젝트가 3년 9개월의 대장정을 끝냈다. 프로젝트 규모는 총투입비용 1000억원, 직·간접 총투입인력 1000명, 시스템 구축 기간 21개월이라는 수치가 말해준다. 이 프로젝트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저 단순한 대형 프로젝트겠지만, 이 프로젝트에 관여한 사람들에게는 열정이자 눈물이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농협 IT 분사의 팀장급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프로젝트 전체 진행과정을 재구성해 봤다. #다양한 인력 구성…험난한 프로젝트 예고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시스템 구축 사업자 선정부터 애를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농협은 삼성SDS를 사업자로 선정, 2007년 4월 25일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하지만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 구성에 있었다. 프로젝트에 본격 착수하면서 농협 내부 인력은 물론이고 시스템 구축 주사업자 등 많은 외부 인력이 투입됐다. 너무 다양한 기업과 조직에서 투입된 인력이라 커뮤니케이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력들의 역량도 천차만별이었다. 게다가 모두가 생각이 제각각이여서 도무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고 보기 어려웠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도 급했다. 서먹한 관계를 없애기 위해 회식도 자주 열었고, 가급적 이야기를 많이 하도록 유도했다. 그래도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궁리 끝에 프로젝트관리팀은 당시 업무별로 나뉘어 있던 팀조직과 별도로 기능별 협의체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상품협의체, 이자협의체, UI협의체 등이 만들어졌다. 기존에 업무 중심으로 나뉘어 있던 팀에서 해당 기능을 담당하는 1∼2명씩을 선발, 협의체를 구성했다. 종적으로만 구성된 팀에 횡적으로 구성된 팀을 추가로 만들어 매트릭스 구조를 구성했다. 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활성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여러 팀에 나눠 소속돼 있는 협의체 인력들은 수도 없이 토론을 했다. 당시 차세대시스템 구축을 위해 마련된 양재동 전산센터 개발실 내 30개 회의실은 늘 꽉 차 있었다. 협의체에는 농협 직원뿐 아니라 외부업체 인력들도 포함됐다. 자연스럽게 초기 불안하기만 했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협의체에 참여한 인력들은 논의된 내용을 각 팀에서 표준화 방안으로 활용, 전체적인 개발 표준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 #개발과정에서 드러난 ‘데이터 히스토리’ 문제점 개발이 본격화되자 또다시 여러 문제가 불거졌다. 가장 큰 문제는 데이터 전환 시 필요한 데이터들의 히스토리를 찾는 것이었다. 농협은 과거 30년을 유니시스 메인프레임으로 운용해 왔다. 당시 메인프레임 수신단에만 3500만 고객의 7500만 계좌 데이터가 쌓였다. 10테라바이트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다. 여기에 거래 내용까지 포함하게 되면 30테라바이트가 넘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모든 개발자를 투입, 밤샘 야근을 통해 전 데이터의 히스토리를 찾아냈다. 오로지 열정만으로 해낸 것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진행이 이뤄지지 못한 데이터 전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개발 기간 완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부담도 커졌다. 당시 개발기간은 2008년 1월부터 5월까지로 타 은행의 사례와 비교할 때 매우 짧은 편이었다. 테스트 기간을 좀 더 여유스럽게 잡기 위해 개발 기간을 1개월 단축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로드맵 상으로 개발기간이 완료됐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은 완벽하게 되지 못했다. 테스트를 시작해야 하나, 연기해야 하나 고민 끝에 개발과 테스트를 병행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 무리수가 따르긴 했지만 개발기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테스트를 미룰 수는 없었다. 개발이 완료된 상태에서 테스트를 진행해야 전체적인 테스트 관리가 이뤄지는데, 개발이 완료되지 못한 부분을 배제하고 테스트를 진행하다 보니, 테스트 초기에 혼란이 발생했다. 일부에서는 책임소재 공방도 벌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농협은 모든 문제점을 공개하기로 했다. 가장 투명한 것이 문제를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의 문제점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됐고,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 농협 직원을 대거 투입,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가동 이틀 전 대형사고, 천운으로 막다 가동을 이틀 남긴 2009년 1월 26일. 정말 오랜만에 많은 눈이 내렸다. 창 밖에 보이는 설경이 오랜 프로젝트 때문에 지친 농협 IT 인력의 심신을 다소나마 달래주는 듯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분도 잠시. 어마어마한 대형사고가 터졌다. 데이터 이전 서버가 입주해 있는 안성 제2센터의 전산실 변압기가 폭설로 인해 고장났다. 이로 인해 전산실 내부 온도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입주돼 있는 서버들이 하나둘씩 죽어 나갔다. 이미 5개의 서버가 죽었다. 천운이었을까. 양재동센터 상황실에서 당직 근무를 하던 직원 2명이 이를 발견했다. 즉각 안성센터에 연락해 전산실의 모든 창문을 개방하도록 지시했다. 당시 전환 서버들은 38도면 죽게 돼 있었는데 전산실 온도가 36도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불과 1∼2분 사이었다. 1∼2분만 늦었으면 전환 서버도 죽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뻔했다. 만약 그때 전환서버가 죽었다면 신시스템 가동은 다음 연휴인 추석 연휴 다음날로 미뤄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됐으면 피해액은 엄청났을 것이다. 당시 당직 근무를 섰던 농협 직원 1명과 한국HP 직원 1명은 나중에 포상을 받았다. #대장정의 낌‘퍼펙트 D데이’ 2009년 1월 28일 오전 4시. 3년 9개월 동안의 대장정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드디어 신시스템이 가동에 들어간다. 연휴동안 서비스를 중단했던 단말, 인터넷뱅킹, 텔레뱅킹, 자동화기기 등 모든 채널이 신시스템 기반으로 동시에 재개된다. 상황실에는 적막이 흘렀다. 상황실에서 모니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시 상황을 김 팀장은 “NASA에서 우주선 발사를 위해 카운트다운 할 때의 느낌이 혹시 이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한다. 첫날 거래건수 1억2500만건, 이 중 센터컷이 3500만건이다. 평균 초당 3100건에 피크 타임 시 시스템 리소스 활용도는 40% 미만이었다. 고객이 느낄 만한 장애는 단 한 건도 일어나지않았다. 대성공이었다. 신시스템을 가동하기 전, 너무나 많은 곳에서 우려를 표현했던 터라 성공적인 시스템 가동이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농협은 10일 후인 2월 7일 상활실을 철수했고, 지난 20일 안정화를 포함한 모든 프로젝트를 최종 완료했다. 농협 내부적으로는 가동 첫날을 ‘퍼펙트 D데이’라고 부른다. 신혜권기자 hkshin@ * 보다 자세한 농협 신용신시스템 프로젝트 스토리는 www.ciobiz.c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농협 신용신시스템 프로젝트 일정표 2005년 5월 : IT 혁신 프로젝트 컨설팅 실시 2006년 11월 : 신시스템 100대 과제 선정 및 사업계획 수립 2007년 4월 25일 : 프로젝트 착수 2007년 4월∼7월 : 요건 분석 2007년 8월∼12월 : 시스템 설계 2008년 1월∼5월 : 프로그램 개발 2008년 6월∼7월 : 통합테스트 2008년 9월∼12월 : 영업점 테스트(5회)·사용자 교육 2008년 10월∼2009년 1월 : IT 전문가 과정 운영 및 영업점 상시 테스트 2009년 1월 28일 : 본 이행 2009년 1월∼3월 : 안정화 신혜권기자 hk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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