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물건거래는 대부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눈으로 서로의 외모와 인품을 살펴보고 물건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 이뤄지곤 했다.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맞이해 가장 크게 변화된 부분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않고 거래를 성사시켜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단으로 신뢰를 담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신뢰의 보안책으로 전자인증서나 비밀번호 등이 많이 이용된다. 그런데 그것의 허점을 파고들어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이 늘어가고, 이를 지키려는 사람과의 전쟁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일명 ‘보이스피싱’이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많은 돈을 갈취해가는 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나의 존재를 대변하는 주민등록번호는 흔하게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막연한 불안감을 금할 길 없고 내가 이 세상을 떠나야만 노출된 주민번호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질 것 같다.

법원의 승인을 받아 이름을 바꾸듯 우리 정부에서 주민번호를 바꿔 준다고 하면 행정부는 한동안 마비상태에 이를 것이다. 그나마 인터넷상에서 주민번호를 대신해 본인임을 확인받을 수 있는 ‘아이핀’이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돌다리도 한 번 더 두드려본 뒤 건너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최근 신문지상에서 ‘지문인식 신용카드가 나온다’는 기사를 보면서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렇지만 이내 곧 “신용카드에 저장된 지문정보가 주민등록 번호처럼 노출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제는 손가락을 잘라야 하나”라는 섬뜩한 생각에까지 미친다.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신용카드에 저장될 지문정보보안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갔으면 좋겠다.

정일호 광주보훈병원 전산실장 boss@bohu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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