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댁 : 뼈대 있는 자손이 할 짓이 아니다.
돌이 : 나는 부평동 검정다리 밑에서 주워온 이가라 안 했나. 나는 족보도 모르는 이가 자손인께 배워도 괜찮다. (웃으며) 그래 족보가 무신 필요 있노. 깜깜세상 탈바가지 쓰고 사는 기 상팔자다.
오완근 : 수고했다. 저놈한테 명태 열 짝 하고 왈 한 섬 내려라.
인부 2 : 고맙심더. (비실비실 웃으며)새빠지게 명태 수레 끄는 것보다 한판 욕값이 더 후하구나.

인부2 공중제비로  마당올 짚으며 퇴장. 인부2의 공중회전과 함께 올리는 미국 국가. 2장 무대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펄럭이는 성조기부터 싸이코라마쪽에서 비죽 고개를 내밀고 올라온다. 무대 전면 어두워지면서 2장 무대로 솟는 어을빈 저택에서 길이 열린다.

▲2장 : 하이카라 잡놈이 드나들더니 기집년 고운 것 갈보로 가고

어을빈이 세운 살구나무 저택. 화이트 하우스 낮은 철문이 열리면서 성조기 높이 솟는다. 미국 국가와 함께 열린 문 사어로 인력거가 천천히 빠져 나온다.
왜소한 조선인이 끄는 인력거 위에 비계 덩어리로 뭉쳐진 어을빈이 미국식 청장 차림으로 앉아 있다.
그 옆으로 한국 최초의 하이칼라 신여성 윤정심이 수행 차림으로 걷는다.챙 넓은 모자에 베일을 늘어뜨리고 굽 높은 펌퍼스 차림의 양장이다.
인력거 옆에는 조선 엽전 가마니가 놓여 있다. 인력거 뒤로 손수레 행렬이 따른다.만병수 약병이 가득 실려 있다.
인력거꾼의 호홉이 숨차다. 와- 먼저 몰려가는 아이들.
어을빈의 두툼한 손에서 엽전이 뿌려진다. 환호성을 올리며 엽전올 줍는 옴투성이 조선 아이들.
인부들도 물려간다. 계속 뿌려지는 엽전. 아낙들도 뒤따라 뛰어간다. 호탕하게 웃어젖히며 계속 길 옆으로 엽전을 뿌리는 어을빈.
객주 평상에는 오완근과 박우점만 남았다. 조용히 술잔을 마주 든다. 비감에 찬 표정들이다. 어을빈의 행렬 객주 평상에 당도한다.
경주댁, 소금 한 바가지를 떠서 공중에 휙 뿌련다. 돌이는 재빨리 윤정심에게 다가가 손올 잡는다.
정심, 싱긋 웃으며 돌이의 손을 잡아 준다. 오완근 박우점 일어나서 인사한다.
오완근 : 어서 오십시오, 어 대인.
어을빈 : 하이,미스터 오. 만병수 재고 떨어졌다 해서 내 조금 가져왔어.
오완근 : 어 대인 만병수가 조선 팔도 명약으로 소문이 나서 명안도 초산에서 제주도까지 주문이 들어옵니다.
어을빈 : 두말하면 잔소리. 위장병·감기·몸살·홧병·치질·임질·매독 다 고친다.(둘러선 아낙에게 만병수 한 병 꺼내 주며) 먹어, 옳지 예쁜 것.(또 다른 이쁜 아낙을 골라) 자,너도 먹어.(얼굴올 만지며) 산후 조리에도 그저 그만이야. 피가 맑아진다,피가.
박우점 : 그 만병수 무시기 재료로 만듭네까?
어을빈 : 내 오줌으로 만든다, 핫하하

만병수 마시던 아낙들 웨-구역질. 어을빈 비대한 몸올 혼들며 박장대소. 인력거가 혼들리고 왜소한 인력거꾼도 따라 혼들린다.
박우점 : 어 대인 물건은 어떻게스리 커서 밑도 끝도없이 싸댑네까?
어을빈 : 내 물건은 태평양 고래 좆이다. 이놈아.

   
 

어을빈 또 한번 상스럽게 웃어 젖힌다.

박우점 : 저 양반 조선땅에 와서 상욕만 배왔나 왜 저 모양이가.
어을빈 : 헛소리 말고 밀린 외상값이나 내놔라.
박우점 : 명태 삼천 짝 싣고 왔을라무네 안심 놓으시오.
오완근 : 이번에는 어음으로 끊어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어을빈 : (스틱을 짚으며 인력거에서 내려선다) 엽전! 나는 구린내 나는 조선 엽전이 좋아. 망쪼가 든 너네 나라 종이 쪼가리를 어떻게 믿어. (스틱을 휘두르며) 빨리빨리 엽전 가마니 풀어.

오완근 한숨을 꺼지게 쉬며 인부들에게 눈짓올 한다. 인부들, 엽전가마니를 서너 개 지고 와 어을빈 발밑에 내려놓는다.
어을빈, 스틱으로 가마니 한 개를 내리친다. 와르르 쏟아지는 엽전. 어을빈, 뒤쪽을 향해 스틱을 한 번 둘린다. 손수레에서 만병수 약상자가 내려지기 시작한다.
어을빈, 쏟아진 엽전을 한움큼 취고 팔을 번쩍 쳐든다. 아이들의 시선이 쏠린다.

어을빈 : (아이들의 목청 흉내) 어을빈 할아버지 만수무강 하옵소서.
아이들 : 어을빈 할아버지 만수무강 하옵소서.
어을빈 : 아멘.

어을빈 엽전을 뿌린다. 아이들 허리 굽혀 줍는다. 어을빈 인력거에 올라탄다.
윤정심, 싱긋 웃으며 돌이의 손을 놓는다.

돌이 : 누나 나 누나한테 할말 있는데
윤정심 : 뭔데?
돌이 : 나 누나한테 장가 갈꺼다
윤정심 : (입을 가리고 웃는다) 니는 내 보다 열살이나 작다
돌이 : 체,작은 고추가 맵다 카던데
윤정심 : (돌이의 볼을 쥐고 흔든다) 니 고추 시어서 못 묵는다. 홋호.
(경주댁이 나타난다)
경주댁 : 어서 썩 꺼져, 이 양갈보년아-.

윤정심, 허전하게 웃으며 돌아선다. 어을빈의 손이 덥석 인력거에서 빠져 나와 윤정심외 허리를 낚아챈다. 가쁜하게 어을빈의 무릎에 앉혀지는 윤정심.
인력거 뒤뚱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른다. 이때부터 아이들의 조롱이 시작된다.돌이 시무룩하게 돌아선다.

아이들 : 귀신아 귀신아 서양 귀신아. 너 나라 어디 두고 조선국에 나왔노.
어을빈 : (획 돌아보며) 조선국이 병이 많아 약 줄라고 내가 왔지.
아이들 : (서서히 접근해 가며) 귀신아 귀신아 서양 귀신아. 너 여자 어디 두고 조선 여자 훔쳤노.

어을빈 화가 나서 인력거에서 슬그머니 내린다. 장정, 아낙들 벙글벙글 웃으며 팔짱올 낀다.

아이들 : (천천히 맴을 돌며) 자마리 꽁꽁 뚱뚱아 앉을 자리 앉아라 똥내 맡고 죽는다.
어을빈 스틱을 휘두르며 애들을 쫓는다. 뒤뚱거리는 모습이 구경꾼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아이들 : 자마리 꽁꽁 백돼지, 누울 자리 누워라. 복상사 걸려 죽는다.

어을빈 돼지 멱따는 고함올 지르며 아이들을 쫓아간다. 아이들, 장정들 뒤로 숨는다.

장정들 : (막아서며) 자마리 꽁꽁 털북숭아,         혼들 때 알고 흔들어라. 손목아지 부러진다.

장정1이 어을빈의 스틱을 빼앗아 던져 버린다. 어을빈 주춤 기세가 꺾인다.

장정 1 : (선창) 하이카라 잡놈이 드나들더니 기집년 고운 것 갈보로 가고 조선 엽전 다 긁어가네.

어을빈 새파렇게 질린다. 무리들의 눈빛이 사나워지며 한 발씩 두발짝 밀고 올라간다. 어을빈, 물러서며 품에서 권총올 꺼낸다.

일동 : (밀고 올라가며) 자마리 꽁꽁 뚱뚱아. 앉을 자리 앉아라. 똥내 맡고 죽는다.

어을빈, 허겁지겁 밀려 올라가며 허공에 대고 공포 한 발을 쏜다. 무리들 전혀 동요하지 않고 더욱 거세게 밀어붙인다.

일동 : 자마리 꽁꽁 백돼지, 누울 자리 누워라.       복상사 걸려 죽는다.

어을빈, 급히 인력거에 올라탄다.

장정 1 : (선창) 팔도 엽전 너 발밑에 엎드려도 없는 게 죄라서 엽전은 줍는다마는 퉤! 댕기머리 버선발은 못 막는다.

어을빈, 공포를 마구 쏘아대며 화이트 하우스 철문 안으로 들어간다. 일동 통쾌하게 박장대소.

일동 : 자마리 꽁꽁 털북숭아, 혼들 때 알고 혼들어라. 손목아지 부러진다.

하이트 하우스 철문 닫혀는 소리와 함께 붕- 긴 뱃고동 여음. 3장 무대가 장관을 이루며 전환된다.
상수 쪽 배경을 뒤엎으면서 밀고 들어오는 화물선 고려환(高農九)선두. 무대 뒤편이 환하게 밝혀지고 고려환 선두에서 김택 형제가 우뚝 선다.  <계속>

저작권자 © NBN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