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문턱에서]

   

 김혜숙
프랑스 뚜르대학
불문학 박사․수필가

연휴 정체를 무릅쓰고 친구 부부가 훌쩍 찾아왔다. 몇 년 만의 재회였지만, 그 몇 년의 간격을 뛰어넘을 수 있는 관계가 친구이다.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 아무래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향수에 젖게 된다. 친구의 남편이 30대 직장생활 중에 3명씩 팀을 짜서 유럽배낭여행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고 한다. 93년도였다고 하니 20여년전 일이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부터 세 사람의 여권을 가지고 테제베 기차표를 사러 갔었던 동료가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그 동료는 짐도 없이 달랑 여권 세 개만 가졌고, 두 사람은 여권 없이 동료의 배낭을 가지게 된 상황이었다. 휴대폰도 없었으니 다시 재회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은 후, 다른 도시들을 거치면서 또 이어지는 시행착오들.

그의 여행이야기 중, 어느 한 순간도 로마의 대단함이나 베니스의 아름다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 에피소드들의 나열이었는데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듣고 있는 친구와 나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아마도 당시 회사 프로젝트의 목적이 이처럼 어려운 상황들을 많이 겪고 오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이 사전 정보라고는 가이드 책의 설명이 고작이었던 시절의 배낭여행은 누구에게나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또한 필름 카메라 시절이었으니 필름 구입과 보관요령이 여행의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였고, 제대로 된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서 셔터 누르는 일도 몇 번의 망설임 끝에나 가능했었다.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그 시절의 여행이야기를 하면서 그리워하고 서로 공감하게 되는 내용은 방문 도시들의 아름다움이나 문화유적의 가치들이 아니다. 기차를 놓쳤던 일, 여권을 분실했던 일 또는 소매치기를 당해서 난감했던 일, 깜깜한 시간에 숙소를 찾던 일 등. 당시에는 여행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큰 사고였었던 일들만이 지금은 서랍 속 보물처럼 새록새록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

지금도 그 회사에서는 그 프로젝트를 지속하냐고 물으니 지금은 아니라고 한다.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것 같았다. 지금의 신입사원들은 옛날 선배들이 했던 시행착오를 겪을래야 겪을 수 가 없을 것이다. 해외배낭여행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한번쯤 실행해보고 싶은, 또 결심만 한다면 실행이 어렵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여행정보들이 넘쳐나고, 찍자 마자 바로 삭제해버릴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 시대이니 옛 시절과는 다른 그들만의 여행법이 자리를 잡았다. 더군다나 미니 미디어 시대이니 저마다 여행기가 넘쳐난다.

그럼에도 이같은 새로운 여행 풍속도 속에서 무언가 허전한 느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 넘쳐나는 여행사진들은 그 지나침으로 인해 오히려 식상하고 감동을 받기 어렵다. 젊은이들의 여행기에는 시행착오에 의한 에피소드들이 별로 없다. 경비를 절감할 수 있는 팁까지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리고 문화와 역사에 대한 사색보다는 맛집 인증 사진들에 열중하는 모습...

나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아쉽다. 시간과 더불어 서서히 생활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발효균과 같은 시행착오들이 일어날 수 없는,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무균질의 그들의 여행법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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