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한달

급속한 변침·과적·설계 변경·부실 대응…예견된 참사 ‘확인’
자녀들 잠적, 유 회장 직접 겨냥…해경대원 소환도 ‘초읽기’

세월호 참사 수사는 크게 세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직접적인 사고 원인을 규명, 책임을 묻기 위해 목포에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졌다.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와 측근의 비리 의혹을 밝히기 위해 인천지검에 특별수사팀이 구성됐다.

여기에 해운업계 전반의 비리를 뿌리 뽑고자 부산·인천지검 등 항만을 낀 관할 지방검찰청이 별도의 팀을 갖추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사고 발생 이후 한 달 간 세월호 선장과 선사 대표 등 일차 책임자들과 유 전 회장 측근 상당수가 구속되면서 세월호 참사 수사는 ‘7부 능선’을 넘었다.

그러나 유 전 회장 일가 대부분이 사실상 잠적하면서 실소유주 비리 수사가 고비를 맞았다.

◇ 설계변경·과적·급속한 변침…예견된 대형 참사

검경 합수부는 세월호 침몰 이틀 뒤인 지난달 18일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사고 원인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세월호는 화물을 많이, 배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아래 부분에 일정량의 물을 채우는 평형수를 줄이고 출항, 사고 지점에서 과격하게 방향을 틀다가 급속히 침몰했다.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승객을 구조하지 않은 채 자신들만 탈출한 어처구니 없는 사실과 정황이 속속 밝혀졌다.

침몰에 직·간접적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 불법 증축, 부실 고박, 엉터리 구명벌 등의 문제점도 확인됐다.

14일까지 유기치사 등의 혐의를 받는 선장 이준석(69) 씨를 포함해 주요 승무원 15명이 구속됐다.

합수부는 15일 이들을 일괄 기소할 방침이다.

이씨에게는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를 우선 적용하고 무죄가 내려질 것에 대비해 예비적으로 유기치사죄를 적용, 기소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합수부의 한 관계자는 “먼저 사실 관계가 확정돼야 하고 그 이후에 법리 적용이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며 “신중히 입장을 정리해 기소하겠다”고 밝혔다.

과적 책임으로 청해진해운 김한식(72) 대표 등 선사 관계자 5명도 구속됐다.

◇ 유병언 일가 수사 속도…자녀들 소환 불응 잠적, ‘유 회장’ 정조준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 전 회장 일가의 경영 비리를 겨냥한 검찰 수사도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유 전 회장 일가가 국내·외에 수천억원대 자산을 보유하고도 청해진해운을 부실하게 운영하고 안전관리를 소홀히 해온 게 이번 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까지 송국빈(62) 다판다 대표, 변기춘(42) 천해지 대표, 고창환(67) 세모 대표, 이재영(62) ㈜아해 대표 등 유 전 회장 측근들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의 칼끝은 이제 유 전 회장 일가를 정면으로 겨눴다.

검찰은 지난 11일 일가 중 처음으로 경영개입 의혹을 받는 유 전 회장의 형 병일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또 최근 검찰의 출석 통보에 응하지 않은 장남 대균(44)씨에 대해 지난 13일 강제 구인에 나섰다. 그러나 체포에는 실패했다.

검찰은 대균씨에 대해 전국에 A급 지명수배를 내리고 밀항 루트를 차단했다. 주요 인물로 판단, 체포 전담팀을 꾸렸다.

해외 체류를 이유로 소환에 불응한 차남 혁기(42)씨와 장녀 섬나(44)씨도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의 자녀들이 출석을 거부하고 사실상 잠적함에 따라 경영 비리의 정점으로 지목된 유 전 회장에게 16일 오전 10시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

그러나 유 전 회장이 자진 출석할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내부적으로 유 전 회장이 소환에 불응할 경우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금수원에 강제 진입, 신병을 확보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유 전 회장이) 출석하지 않으면 법과 원칙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혀 소환 불응 시 곧바로 체포영장을 청구할 방침임을 내비쳤다.

만약 자녀들에 이어 유 전 회장 역시 소환에 불응하고 잠적할 경우 세월호 참사 책임을 묻기 위한 검찰 수사가 예상 외로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뿌리 뽑자’…해운업계 비리도 전방위 수사

세월호 사고 원인 수사와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수사가 이번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을 밝히는 것이라면 해운업계 비리 수사는 간접 원인을 제공한 관련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파헤치는 것이다.

부산지검과 인천지검이 각각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한국선급(KR)과 한국해운조합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부산지검은 한국선급 전·현직 임원들의 공금 횡령과 배임 혐의에서부터 정치권 로비와 선박 검사 비리 등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전방위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지난 14일 공무원에게 술과 골프를 접대하고 상품권을 준 혐의(뇌물공여)로 한국선급 팀장 김모(52)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또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에게 수십 차례에 걸쳐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다른 팀장급 간부를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해수부를 비롯, 해양관련 기관 소속 공무원 7∼8명이 한국선급 본부장에게서 상품권 780만원을 받은 정황도 포착했다

인천지검도 선박 안전상태 등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채 허위로 보고서를 작성한 혐의(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등)로 해운조합 인천지부 소속 운항관리자를 사법처리했다.

검찰은 해운조합과 선사협회 등 해운업계 이익단체들이 해수부, 해경 등에 금품 로비를 벌였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 ‘총체적 부실 대응’ 해경 관계자 소환 ‘초읽기’…감사원 고강도 감사

세갈래 수사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총체적 부실 대응’이라는 국민적 질타를 받는 해경에 대한 본격 수사도 임박했다.

검찰은 다음 주께 별도 수사팀을 꾸릴 방침이다.

합수부는 사고 발생 12일 만인 지난달 28일 목포해경, 전남도 소방본부 상황실, 제주·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를 압수수색해 근무 일지와 당시 교신 녹취록을 확보했다.

그러나 해경 관계자 소환은 아직 한 차례도 없었다.

탑승자 휴대전화 등에 대한 디지털포렌식센터(DFC)의 분석과 공개된 구조 영상 등을 통해 사고 상황 재구성 작업이 상당 부분 진행됐다.

해경 관계자 소환도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검찰은 출동 단계부터 ‘골든타임’을 허비한 경위, 선내 진입을 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줄이지 못한 책임 등을 물을 것으로 보인다. 수색·구조작업에서 불거진 민간업체와의 특혜 의혹도 수사 대상이다.

검찰 수사와 별도로 감사원의 강도 높은 감사도 시작됐다.

감사원은 지난 14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20일 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특정 감사에 착수했다.

국토해양감사국 1과 21명 내외로 구성된 감사단은 서해해경청과 소속 기관을 대상으로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한 전 분야에 걸쳐 집중 감사할 방침이다.

특히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초동 대응 실태와 대형 재난 사고 대응 매뉴얼 등을 집중적으로 살필 예정이다.

저작권자 © NBN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