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문턱에서]

   
송해룡
고려대의과대학부속 구로병원

왜소증(dwarfism)이란 성인이 된 사람의 키가 147.5cm(4피트 10인치) 이하로 보통 사람보다 현저하게 작은 사람들을 말한다.

왜소증의 원인은 다양한데, 의학적, 유전적 특수 발전기전이 알려진 것만 해도 200여 가지가 넘는다. 보통 같은 성, 같은 나이의 어린이들은 100명 중 키가 맨 앞에서 3명 정도에 해당하고 성장기임에도 불구하고 한해에 키가 4cm 이하로 자라면 왜소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내가 왜소증에 특별히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지금부터 23년전 미국 소아정형외과학회에서 정형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하고 있는 마이클 안(Michael Ann)을 만나고부터다. 키가 125cm인 마이클 안은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자부심을 잃지 않고 의사로서 열심이었고, 장애인이나 키 작은 사람들이 겪을 차가운 시선을 극복하고 더구나 의사까지 되었으니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면 마이클 안이 의사가 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말이다. 마이클 안을 통해 나는 미국의 키작은사람들 모임(Little People of America 약칭 LPA)을 알게 되었고 또 직접 만나 교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왜소증 환자들이 마이클 안처럼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환경을 조성해야겠다는 결의를 갖게 되었다.

지난 1998년 <수술로 키를 늘릴 수 있다구요?>라는 책을 낼 때부터 나는 미국의 LPA(미국작은키모임)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사회는 그걸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KBS_2TV <인간극장>이란 다큐멘터리에서‘작은 거인 4형제’라는 왜소증을 앓고 있는 4형제의 눈물겨운 스토리가 방영되었다. 당시 맏형인 42세 황회동, 38세 황세영, 28세 황정동, 22세인 막내 황정영 4형제는 선천적 왜소증 때문에, 불편한 어머니와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서 맏형 회동을 제외한 3형제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천막무대에서 공연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게 불행이라면 불행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TV속의 4형제는 밝고 당당하게 나름대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작은 거인 4형제도 세영씨의 딸 가은이의 유전자검사결과와 막내 정영이의 성장판 검사결과가 왜소증의 한 원인인 연골무형성증으로 결론이 나자 눈물을 보이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런 환자들을 많이 보았던 나로서는 이들 4형제가 나이를 먹으면 곧 무릎이 심각하게 아파올 것 등등 의학적 소견이 훤히 내다보였다. 왜냐하면 무릎 윗부분인 대퇴골(허벅지뼈)과 무릎 아래의 경골(정강이뼈)이 안쪽으로 휘어져있고, 발목 윗부분도 정강이뼈가 휘어져 있어서 다시 말하면 전체적으로 무릎과 발목이 안쪽으로 휘어져있는 이들은 발바닥 전체가 땅에 닿지 못하고 발바닥 바깥 부분만 닿게 된다. 무릎과 발목이 안쪽으로 휘어져있어서 온 몸의 체중이 무릎관절 안쪽과 발목관절 안쪽에 집중되어서 30분만 걷거나 서 있거나 심지어 앉아있어도 무릎에 통증이 오게 된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어떻게든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4형제들을 만나보게 되었고, 마침 내가 재직하고 있었던 경상대학병원의 도움으로 아주 저렴하게 막내 정영이를 수술해주게 되었다.

4형제들은 방송에 소개된대로 ‘미미 엄마’라는 참으로 운명적인 한 여인의 보살핌 속에 서커스를 해가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친해진 나는 이들이 언제까지 서커스로 계속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대책을 물었다. 하지만 그들 형제에게 어떤 대책이 있겠는가? 그들 또한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특별히 배운 것도 없고 나이도 먹어서 그들을 받아줄 곳은 없었다. 그렇지만 형제들은 대구의 정보통신고에 다니는 막내 정영이의 장래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았다. 나는 정영이에게 새로운 직장을 갖게하려면 대학에 보내야 한다고 형제들을 설득했고 내 제안을 받아들여 정영이도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지금 정영이는 의료기기 회사 직원을 거쳐, 우리 단체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렇게 이들 형제들과 내 인연은 이어졌다.

그리고 4형제이야기가 다시 5부작에서 20부작으로 후속 방영이 시작되자, 4형제와 우리는 한국작은키모임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앞서 방영된‘작은 거인 4형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소증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과 냉소를 일부분이나마 해소해주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우리는 내 진료를 받은 환자들과 함께 2000년 12월 한국작은키모임(Little People of Korea, 약칭 LPK/ 2011년 2월 한국저신장장애인연합회 Association Little People of Korea,ALPK로 개칭)을 창립했다.이 모임은 미국 APA와도 1년에 두 번씩 정기모임을 갖고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이제 창립 14년이나 되는 우리 모임은 초창기 어린 회원들이 어엿한 대학생이 되거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직원이 되고 공공기관에 취직된 청년회원들이 많아졌으니 참으로 대견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사회 각 기관들의 더 많은 지원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저작권자 © NBN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