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연구과제가 있어 정성스레 제안서를 만들어 경쟁에 참여했는데 고배를 마셨습니다. 거의 되는 줄 알았는데 떨어졌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인데 우리가 떨어진 이유가 있더군요. 저탄소 녹색성장 붐이 일면서 요즘 나오는 연구과제의 대부분은 그린이나 녹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심의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제외된답니다. 그런데 경쟁에서 뽑힌 기업 면면을 보면 딱히 그린이나 녹색에는 맞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최근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A사 B사장이 겪은 경험담이라며 한 이야기다. 비단 B사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 발표 이후 모든 부처가 내놓는 정책에 그린이나 녹색이라는 단어는 필수가 됐다. 부처가 이 정도면 산하 공공기관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이런 트렌드는 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금은 그린오션, 녹색성장의 시대다. 동시에 에너지자원 확보를 위한 전쟁도 전개되고 있다.

1배럴당 150달러에 이르던 국제유가가 지금은 비록 작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내려오긴 했지만 달러화나 엔화에 비해 원화가치가 저평가돼 체감 수준은 그리 낮지 않은 형편이다. 에너지 교역 적자도 2007년 697억9000만달러에서 작년엔 1037억2000만달러로 늘어났다. 적자 순증액만 339억3000만달러며 이는 작년 경상수지 적자(64억달러)의 다섯 배를 넘는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의 단면이다. 해외 에너지자원 확보와 에너지효율화를 비롯한 장기적 안목의 에너지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숫자만 놓고 보면 에너지 효율을 20∼30%만 높여도 에너지 무역 적자액이 200억∼300억달러 줄어든다. 에너지자원 확보와 더불어 에너지를 얼마나 효율화하는지에 따라 우리나라 무역수지 색깔이 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에너지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하면서 동력자원부를 설치, 운영해오다가 김영삼 정부 시절 상공부에 통폐합했다. 이후 산업자원부 시절인 2005년엔 복수차관제를 둬 제2차관이 에너지 자원정책을 담당하도록 했으나 최근 들어 정통 에너지자원 관료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관가와 학계·연구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동력자원부가 없어지고 유가가 안정되면서 에너지자원 분야는 관료들이 커리어를 쌓기 위해 한번쯤 거쳐가고 싶어하는 분야로 전락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을 제시하고 지난 2월에는 부처들의 쏟아지는 녹색관련 정책을 교통정리하고 조율하는 기관으로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유관 부처에서 파견 온 공무원과 각계 전문가들을 모은 위원회 조직이 부처 간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책 주도권 다툼을 조율하는 등의 막강한 실권을 행사하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14개 부처밖에 없는 미국은 많은 에너지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에너지부를 설립, 운영하고 있고 러시아는 작년 5월 에너지부를 산업에너지부에서 분리했다. 영국은 작년 말 두 개 부처(에너지·환경)를 합쳐 에너지·기후변화부를 만들었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부처를 신설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다시금 에너지자원 전담부처 신설을 고민해야 할 이유기도 하다. 주문정·그린오션팀장 mj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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