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德)과 성(誠)으로 보는 인(仁)과 의(義) 우리는 흔히 동양의 대표적 전통사상으로 「유·불·선」삼교를 일컫는다. 그리고 이 한자어 명칭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곧 「인(人)」자(字)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유·불·선」에서 인자를 제외한 나머지 글자 需(구할 수)·弗(아닐 불)·山(메 산)은 뜻을 갖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음만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삼교의 뜻을 「인(人)」자에서 찾을 수 있다면, 중국 문화적 전통 속에서 동양인의 의식에 비쳐진 근본 사상이나 종교 내지 철학은 첫째, 그 다양한 현상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공통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며, 둘째로 이들 사상이 인간을 근분 문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인간에 대한 관심을 철저히 관찰한 사상으로서 우리는 특히 유교 곧 유학을 들어 볼 수 있다. 유학을 가장 단순화시켜서 규정할 때 「수기치인지도(修己治人之道)」라 한다. 이때 수기(修己)에서의 기(己;나)와 치인(治人)에서의 인(人;남)은 모두 사람이다. 수기가 개인의 내면적 품성을 지향하는 것이고 치인이 인간의 사회적 질서를 지향하는 것이라 대조시켰을 때에도 역시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유교에도 위로는 인간을 넘어서는 천이나 도의 초월적 세계가 있고, 또한 인간의 삶을 뒷받침해 주는 자연 내지 물질의 세계도 더불어 존재한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을 다하는 자는 자기의 성을 알고 자기의 성을 아는 자는 하늘을 안다」는 맹자의 언급에서도 드러나고, 「사람이 도를 넓힐 수 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공자의 말씀에서도 밝혀지는 것처럼, 유교에서의 초월적 세계는 인간을 통하여 인식되는 것이고 실현되는 것이라 이해된다.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바로 잡아서 사물이 바로 되게 한다(『맹자』)」하고, 「성(誠)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중용』)」고 하며, 대인(大人)은 「자기를 바로 잡아서 사물이 바로 되게 한다(『맹자』)」라는 언명에서 보여 주듯이 물질의 세계도 인간으로부터 떠날 수 없는 근원적 연결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초월적 세계인 천(天)과 물질적 세계인 지(地)가 인간을 매개로 하여 천·지·인의 삼재(三才)로서 결합된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동양인의 유교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중화(中和)를 이루면 천지도 제자리를 잡게 되고 만물도 제대로 자라게 된다(『중용』)」는 말에서 유교의 이념은 인간과 그 인격적 존재로서의 가치가 세계 안에서 얼마나 근원적인 의미를 갖는지 가장 함축성 있게 나타내고 있음을 본다. 군자·선비·대인·성인 등 유교적 인간상은 단순히 도덕적 인격존재를 넘어서 인간을 통하여 가치와 진리의 실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유교적 인격이 갖는 근원적 가치내용을 여러 가지로 말해 왔지만 흔히 덕이나 성이라는 범위 안에서 밝혀볼 수 있다. 덕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얻은 것이라 하여 인격의 선천적 근원성을 확인하기도 하고, 성은 천·리와 통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본질적 존재로 이해되기도 한다. 공자에 의해 가장 기본적인 개념으로 제시된 인이나, 맹자를 통하여 더욱 선명하게 제기된 인·의를 덕과 성의 내용으로 분석된 것이다.

인간의 인격적 가치내용으로서 의는 공자에서부터 중요시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특히 맹자에 와서 인과 짝을 이룰 만큼 중요시 되었다. 의는 인간의 행동이나 태도의 모습을 가리키는 의(儀)의 뜻을 갖는 것이면서 그 행동의 마땅함을 의미하는 의(宜) 또는 의(誼)의 뜻을 갖는다.

맹자는 인의로써 인과 의를 함께 제시하였다. 그는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이 가는 길이다」라거나,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라고 하여 인과 의를 대조시켰다. 곧 인이 인간의 내면적 바탕이라면 의는 인간의 외형적 행동규범으로써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인과 의는 내면과 외형으로 단절시켜 분별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인격성이 갖는 겉과 속으로서 서로 보완적이며 조화되어야 할 것임을 맹자는 깊이 인식하였다.

인이 사랑의 포용적 성격이라면 의는 악에 대한 배척의 분별적 성격으로 말할 수 있다. 의는 불의를 거부하고 증오하며 부끄러워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이 포용성을 갖는데 비하여 의는 분별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의는 유교적 삶의 현실 속에서 흔히 엄격하고 저항적이며 강인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유교에서 바라는 인격의 양면인 어질고 후덕스러운 면과 대조적으로 꼿꼿하고 존엄한 면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집단 이기주의와 경제논리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지금 유교이념의 개인적·사회적·역사적 차원의 모든 상황에서 인과 의는 두 가지 기본 원리를 이루는 기준이 될 수 있으며, 특히 도덕적이거나 사회적인 위기에서 사람이 중심인 의가 더욱 절실한 자세로서 요구되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저작권자 © NBN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