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문턱에서]

   

 정철웅
 부산대 기계공학과 교수

얼마 전에 같은 대학의 동료교수님이 서울소재의 대학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불쑥 맹자의 군자 3낙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고 질문을 하셨다. 지금도 나머지 두 개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3낙 중에 하나는 기억하게 되었다. 得天下英材 而 敎育之 三樂也(득천하영재 이 교육지 삼락야). 즉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맹자의 군자 3낙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 교수님이야 동료로 일하다가 갑자기 떠나게 되어 머쓱한 마음에 직장을 옴기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한 말이겠지만 대학에서 교육을 업으로 사는 교수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말이 아니겠는가!

학기초부터 올해 1학년 신입생의 성적이 좋다는 소문이 나돌다가 최근에 구체적 자료가 나왔는데 작년에 비해서 신입생의 전국등수가 평균 약 9000 등이 올랐다고 한다. 단 1년 만에 엄청난 향상이다. 맹자와 같은 마음으로 나도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 마음이 일었다. 한 20년하고도 몇 해 더 전 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려고 했을 때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인구는 400만쯤 되었고 흔히 말하는 SKY 대학에서 KY대학을 갈 정도의 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대학에 진학을 했었다. 그러던 것이 어찌어찌 하다 보니 지금의 대한민국의 인구는 4000만에서 5100만쯤으로 늘었는데 나의 고향 도시는 350만명으로 오히려 인구가 줄었고, 우리대학 입학생의 성적도 그 시절에 비해서는 많이 하락한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야 대한민국 국민이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만한 수도권집중화 현상 때문이다. 수도권집중화 문제로 인한 여러 가지 병폐야 잘 알려져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많은 미디어에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제각각의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으니, 어줍지 않은 비전문가로서 그런 말들에 첨언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맹자의 군자 3낙 중 하나를 누리고 싶은 호사스러운 마음에 도대체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불쑥 우리는 도대체 왜 지역균형발전을 하려고 할까 하는 원초적 의문이 들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소재의 대학으로 유학을 갔었고, 대략 10년을 서울을 비롯한 타향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솔직히 타향에서 살 때는 지역균형발전과 같은 문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내 주변의 환경이 중요했었지 고향이라고 해서 지방도시의 발전이 내 마음에 진심 어린 울림을 주지는 않았다. 아마 지금 수도권에 살고 있는 25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니 그 분들에게 왜 지역균형발전에 신경을 쓰지 않냐고 하는 야속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는 것 같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가 사는 곳이 좀 더 편하게 살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지 언제 다른 장소와 지역에까지 신경을 쓸 여지가 있겠는가? 그것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선거철에는 주소지로 내려와서 지역발전을 위한 여러 공약을 내세우지만 선거가 끝나고 여의도 국회로 올라가 그 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가족까지 서울에 있으면 10여 년 전의 나의 마음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이 좀 더 편안한 곳으로 바뀌기를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면 인구의 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에 집중화가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수도권 집중화가 일으키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존엄과 직결되는 자존감이다.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다고 하는데, 조금 과장을 보태면 태어나는 지역에 따라 다른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지인이 몇 해전에 나에게 이런 경험담을 말한 적이 있다. 본인은 수도권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어느 회사의 인턴 생활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와 마찬가지로 인턴을 하기 위해서 부산대에서 온 학생들을 여럿 보았다고 한다. 근데 그 학생들의 눈빛에서 나타나던 이상한(?) 자신감 혹은 자부심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그것을 말하는 지인의 말속에는 잘 알지도 못하던 대학에서 온 예비경쟁자에게 뜻하지 않은 자신감 넘치는 도전을 받았다는 생경함이 묻어있지만, 난 그런 눈빛을 요즘의 우리 학생들에게는 볼 수가 없다. 이른바 지방 제일의 국립대, 아니 요즘은 국내 제1의 국립대 학생들인데 그런 학생들 눈빛 속에 그런 자신감을 볼 수가 없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진학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상처로 남아있는, 아니 지방에 태어난 것이 2류, 3류의 자존감을 가지게 만드는 그런 대한민국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일단 유능한 인재들이 맘껏 뜻을 펼 수 있는 유능한 기업체들이 많아야 하고, 그런 기업을 많이 유치하려면 유인할 수 있는 매력전인 사회적 인프라가 있어야 하고, 사회적 인프라는 충분한 재정을 가진 지방정부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고, 지방정부의 건전한 재정은 유능한 회사와 인재에게 다시 의존한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다. 수도권집중화란 골리앗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말콤 글래드웰은 최근작 “다윗과 골리앗”에서 약자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강자의 규칙이 아닌 약자의 규칙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약자의 새로운 규칙은 문제를 완전히 다른 창조적 시각으로 바라볼 때 생긴다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창조적인 시각? 지역균형발전의 시작을 하드웨어 측면이 아닌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접근하면 어떨까? 지역균형발전의 목적이요 끝은 결국 자기고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럼 반대로 자기 고장에 대한 사랑으로 지역균형발전의 첫 단추를 끼우면 어떨까? 자기 고장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그것이 지역균형발전의 시작이요 끝이 아닐까? 여러 사람이 다 같이 노력해야겠지만 난 내가 있는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맹자의 인생 3낙이라는 호사를 논하기 전에, 자기 고장을 사랑할 수 있는 멋진 인재를 키우고, 그 인재가 창조적인 가치를 창출해서 멋진 내 고장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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