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1890년대의 부산 개항장

   
 

조선인들 우르르 물러나 구경꾼으로 참여하고 왜인들은 움직이지 않고 수병들의 행태를 관찰한다. 고리우바스키, 왜식 요정 경판정에 당도한다. 장교 서넛이 뒤따른다. 고리우바스키와 사관들 다짜고짜 자리에 앉는다. 왜인들 얼어붙어 있다.

고리우바스키: 술!

왜녀 한 명이 재빨리 술상을 갖다 놓고 돌아서려는데 사관 한 명이 왜녀의 허리춤올 낚아채어 무릎 위에 앉힌다.

사관 1: (싱긋 웃으며)그리고 여자!

이 말에 맞춰 사관들이 서 있는 왜녀들을 하나씩 끼고 앉아 사납게 입을 맞추고 몸을 더듬는다. 왜녀들의 자지러지는 비명. 왜인들 속수무책이다.

조선인 구경꾼1: 왜놈들도 아라사한테는 꼼짝 못 하는구나.

조선인들 대리 만족감에 젖어 키들거리며 웃는다. 이때. 김택2. 고리우바스키 옆에 선다.

김택2: 오늘은 영업이 끝났습니다,로스케 대위님.
고리우바스키: 영업? 너회들 마음대로 판을 벌이고 너희들 마음대로 끝내나? 여기는 조선땅이야. 너회나 우리나 지금 남의 땅에 있는 거야.(술잔을 기분좋게 들며) 그리고 오늘은 1899년 7월11일 내 생일이야. 지랄같던 19세기를 마감하는 이 고리우바스키의 마지막 생일이라구.
김택1:(타협적으로) 일본 여자는 부드럽습니다. 세계 최고로 부드럽죠, 네. 그건 아시잖아요. 좀 살살 다루어 주셨으면 해서…
고리우바스키: 여자는(왜녀의 가슴을 아프게 움켜쥐며) 강하게 다룰수록 좋아해.

왜녀, 비명올 지르며 벌떡 일어난다.

고리우바스키: 이리 와, 쪽바리 년아-.

이때, 김택 2가 달려들어 고리우바스키의 멱살올 잡는다.

김택2: 냄새나는 로스케! 어서 이 자리를 떠나라.

고리우바스키, 김택2의 복부를 무릎으로 질러박고 면상올 큰 주먹으로 쳐 버린다. 맥없이 뻗어 버리는 김택2.

고리우바스키: 섬나라 소인배들아. 대러시아제국의 맛올 알겠냐?!(술병을 혼들며)                자, 승선. 본관의 19세기 마지막 생일파티는 이것으로 족하다.

사관들, 술병을 하나씩 움켜쥐고 뒤따른다. 조선인 구경꾼들 우 몰려들어 러시아 사관들올 구경한다. 고리우바스키와 사관들 닥치는대로 조선인들을 걷어찬다.

장정1: 우리는 조선인이오. 구경만 하고 있는 사람들을 왜 때립니까?
고리우바스키: 구경? (구듯발로 걷어차며) 에라,이 쓸개 빠진 인간들아. 제 집에 불이 나도 구경하겠어?! (조선인들을 둘러보며) 너회들은 이 세기말과 함께 끝장이야. 알아들어? 그것이 왜국이건 미국이건 아라사건 잡혀 먹힌단 말이야. 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조선인들 풀이 죽어 물러나고 고리우바스키 일행 무대 후경 쪽으로 비척비척 걸어간다. 김택1, 쓰러진 김택2를 일으키며

김택 1: 더러운 로스케, 오늘이 너희 제국 몰락의 기념일이 될 것이다.

김택 1, 일본도를 빼어든다.

김택 1: 도쯔께끼-

고려환 배 옆구리가 별안간 열리며 불꽃이 번쩍번찍 틘다. 콩볶는 총소리. 무대, 어두위지며 화염이 전면으로 번진다. 조선인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설설 긴다. 경주댁이 뛰쳐나와 돌이를 부른다.

경주댁: 돌아-돌아라-.
조선인들: 난리다-, 난리 터졌다!

어두운 하늘에 섬광이 번뜩이고 쓰러지면서 웅전하는 러시아 수병들. 돌이,재빨리 정심의 손을 잡고 명태 고방으로 달려간다. 엎어지는 윤정심을 어린 돌이가 잡아 끈다.

김택1: (칼을 빼들며) 전쟁이다- 도쯔께끼

왜상들이 갑자기 무장한 차림으로 변신한 채 총올 쏘며 성벽에서 뛰쳐나온다. 러시아 수병과 왜인물의 접전이 벌어지면서 조선인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경주댁: 남의 집 안마당에서 이 무신 지랄들이고 쌔빠질 놈들아아-. (통곡) 여게는 사랍도 없나?! 조선 사랍들 아- 상투 튼 사내자식들은               다 나온나. 상투값이라도 해야제, 상투값이라도-.둔중한 옴악과 함께 밤이 온다. 멀리서 돌아-돌아아- 부르는 경주댁의 소리 아스라이 멀어지고, 명태 고방 문이 비쭉 열리고 윤정심과 돌이의 모습이 달빛 아래 열린다. 윤정심 옷고름을 매만지며 돌이를 돌아 본다. 돌이 허리춤을 추스리며 나오다가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돌린다.윤정심 웃는다.

윤정심: 소문 내면 안돼
돌이:…
윤정심: 날 가까이 하지 마.오늘 밤 일은 잊고… 좋은 처녀 만나서 살아야 돼 (윤정심 가려는데, 소년 돌이가 달려와 정심을 부둥켜 안는다)
돌이: 누나는 내 각시다
윤정심: 안돼!
돌이: 오늘부터 내 각시다.
윤정심: 나는 팔려간 몸이야 
돌이: 누가 누나를 팔아 묵었는데
윤정심: 우리 집이 빈곤해서 울 아부지가 미국인 선교사한테 은전 백냥에 날 팔았단다.그래서 나는 내 몸 내 맘대로 못한단다.
돌이: 내가 그돈 갚아주믄 될거 아니가
윤정심: 갚아주믄 뭣 하노 이미 더렵혀진 몸
돌이: 괘안타,사람들이 누나보고 뭐라캐도 나는 괘안타,나는 누나가 좋은기라. 영도섬 미나리 밭에서 누나 첨 보고 나는 마 반했는기라. 그때부터 누나는 내 각시였는기라
윤정심: 미나리 밭에서 미나리 딸 때 부르던 노래 니 아나
돌이: 그래 안다
윤정심: 우리 불러보까
돌이: 그래
윤정심: 하늘은 높아도 기러기라 재고 일본은 멀어도 다달이 편지 동아같은 우리 오빠 일본 대판 가시고 몸 가축하라고 돈 삼전 부쳤네
돌이: 돈 삼전 찾으러 우편국에 갔더니 1234 몰라서 못 찾게 되었네
정심 / 돌이: 오너라 가너라 올마나 굴어서 정거장 마당이 한강수 되었네
정심: 홋호호
돌이: 핫하하
 
돌이,정심에게 다시 안긴다. 정심,돌이의 머리통을 어루만져주며

정심: 돌아 저 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봐. 네 사랑은 너무 아름다워서 이 풍진 세상에서는 찾을 수가 없어 내가 만일 죽거들랑 저기 어느 하늘 아래 빛나고 있을 너의 사랑이 되고 싶어.

정심, 돌이를 끌어 안고 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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