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여론반대 불구 동해남부선 역사주변 ‘용도 변경’
올 2월 해운대·송정 역 주변 땅 ‘상업시설’로 변경
지난해 1월 해운대 폐선부지 상업개발 먼저 제안도
저자세 협상 등 이권 노린 외부세력 간여 의혹 높아

부산시가 시민들의 반대 여론이 한창이던 지난 2월 한국철도시설공단의 개발사업 계획에 들어 있는 송정·해운대역 역사 주변 땅의 용도를 변경해 상업개발을 반대하는 시민 정서에 역행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동해남부선 폐선 구간(부산 해운대 미포∼송정) 상업개발을 부산시가 철도시설공단에 먼저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시는 지난 2월 해운대구 우동 해운대역사 주변 9천690㎡, 해운대구 송정동 송정역사 주변 1만2천700㎡의 용도를 ‘제2종 일반주거’에서 ‘일반상업’으로 변경했다. 변경 사유는 ‘동해남부선 폐선부지의 활용도 제고’였다. 용도 변경된 땅이 우연하게도 역사 부지와 붙어 있어 이 땅의 용도변경 없이는 역사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난달 ‘폐선부지 중 해운대역과 해안지역(미포∼송정역 폐선구간 4.8㎞) 상업개발을 위한 민간제안 공모’를 시행했다. 따라서 부산시의 해운대와 송정역 주변 일반주거부지의 용도변경은 이 같은 철도시설공단의 역사 상업개발을 위한 사실상의 사전절차로 보여진다.

부산시는 지난해 12월 해운대·송정 역사 활용계획을 발표하면서 “송정과 해운대 역사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고려해 보존할 수 있도록 철도시설공단과 협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용도변경으로 인해 해운대·송정 역사 보존 의지가 거짓이었다는 비난을 면하기가 어렵게 됐다.

철도시설공단이 민간제안공모에서 채택한 모 컨소시엄의 개발안에 따르면 송정역의 경우 현 시설 대신에 레일바이크 대기공간, 철도체험길, 철도모형박물관 등 관광·레저 수익시설을 채우는 것으로 되어 있다.

1940년 지어진 송정역은 현재 역사는 물론 창고, 대지, 역사를 중심으로 좌우한 철로 150m 등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역사는 1940년 12월 목조 단층 기와지붕 건물형태로 지어져 1930∼1940년대 역사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특히 창고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독특한 철제 장식의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져 건축물로서의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철도시설공단이 이번 민간제안 공모 대상에 애초 포함했다가 제외한 해운대역사도 현재 우리나라 철도역사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팔각형 지붕 역사라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산시는 또 철도공단과 2013년 11월 ‘동해남부선 철도자산 활용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기 10개월 전에 이미 친환경 개발을 포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18일 한국철도시설공단의 ‘동해남부선 개발사업 추진현황 보고’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월 25일 부산시가 ‘폐선구간 가운데 활용 가능 부지를 공단이 개발하고 잔여지를 부산시가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내용의 협의를 공단에 요청했다.

2011년 많은 용역비까지 들여 폐선 부지를 친환경 그린웨이로 조성하겠다며 청와대, 국토부, 기재부 등을 상대로 폐선 예정부지의 무상귀속을 추진하던 부산시가 갑자기 공단에 ‘활용 가능 부지를 공단에서 자체 개발하고 잔여지만 달라’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철도공단이 애초 미포∼송정 구간에 레일바이크 등 수익시설 유치를 계획한 상황에서 부산시가 시민을 위한 개발안을 포기하고 사실상 상업개발을 허용하는 안을 먼저 제안한 셈이다.

부산시와 공단은 이 제안을 근간으로 5차례 실무협의를 거쳐 지난해 11월 전체 협의구간 가운데 천혜의 해안 절경을 자랑하는 해안지역(미포∼송정) 4.8㎞와 옛 해운대역은 철도공단에서 상업시설 유치를 통해 개발하고, 주택 구간인 5.5㎞는 부산시가 공원으로 활용한 뒤 국가에 기부하는 내용으로 ‘동해남부선 철도자산 활용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이 자료는 철도공단 자산개발사업처가 지난달 9일 ‘미포∼송정’ 구간 상업개발을 위한 민간제안 공모와 관련해 작성한 것이다.

자료에는 2011년 11월 부산시의 무상귀속 요구는 불가능하며 부산시가 2010년 9월에 공단과 맺은 첫 협약(폐선구간 관광자원화 공동개발 협약)을 위반하면 단독 개발하겠다며 부산시를 압박한 내용도 들어 있다.

이후 부산시와 공단이 1년 2개월 동안 6차례에 걸쳐 협상을 벌이며 줄다리기를 했는데 사실상 협상의 주도권을 쥔 부산시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 상업개발을 위한 분할 개발안을 먼저 요청하는 등 저자세로 협상을 전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업시설 개발을 위한 용도변경 등 각종 인허가권을 쥔 부산시의 협력 없이는 철도시설공단이 단독으로 개발하기는 불가능하다.

역사 주변 용도변경, 저자세 협상 등 일련의 과정에서 부산시는 상업개발을 통해 이익을 챙기려는 외부세력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상연 기자 lsy@busaneconomy.com

저작권자 © NBN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