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
 부산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집 가까이 조금 한적한 도로에서 운전을 하는데 난데없이 골목길에서 차 한 대가 튀어나와서는 내 차 앞으로 도로를 가로질러 반대편 차선으로 들어간다. 놀라 차를 세우고 쳐다봤더니, 젊은 운전자가 대뜸 눈을 부라리며 쌍시옷 자가 들어가는 욕설을 내뱉는 것이 아닌가. 아마 그쪽도 많이 놀라기는 했을 터이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또 얼마나 더 많이 놀랐겠는가. 그런데도 위험한 운전으로 사고를 낼 뻔한 사람이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양 구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럴 때 기성세대가 흔히 하는 말이 “요즘 젊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요즘 젊은이들만의 문제일까. 내 탓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거늘 말이다.

국가보훈처장이라는 이가 세월호 참사를 9․11 테러와 비교하면서, 국가적 위기에 미국민들은 서로 단결하는데 우리 국민들은 정부와 청와대 탓만 한다고 말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국민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 제대로 못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정부가 비판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 정부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 라면이나 먹고 기념사진이나 찍는 일이 과연 정부가 할 일인가. 참으로 내 탓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하기야 대통령 말씀을 받아쓰기하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장관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국민들의 탓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면 또 할 말이 없기는 하다.

지난 1997년의 외환위기는 단군 이래 우리 민족의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로 불린다. 그런데 그때 경제 부총리를 맡았던 이가 구속되면서 말하기를, 6.25 때부터 누적되어 온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내가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이다. 외환위기의 먼 원인을 굳이 찾아보자면 한국전쟁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그런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점들을 해결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면 애당초 그런 자리를 맡아서는 안 되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 아니겠는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적폐를 해결하겠다고 말하였다. 적폐란 누적된 폐해라는 뜻일 터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더 노골적으로 예전 정부들에서 쌓여 온 문제라거나 예전 정부의 잘못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정부의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예전 정부들에서부터 누적되어 온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면 출범 이후 지금까지 이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설마 그런 적폐가 있는 줄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세월호 참사로 이제야 알았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들어 보면 우리와 남이 뚜렷이 구분된다. 행정 개혁이 안 되는 것은 개혁을 거부하는 공무원 탓, 경제가 어려운 것은 자기 이익만 챙기는 노동조합 탓, 정부가 제 할 일을 못하고 있는 것은 국론을 분열시키는 세력 탓, 이도저도 아니면 예전 정부 탓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선사 탓, 선장 탓, 해경 탓, 공무원 탓은 있는데 그들을 감독하고 감시해야 할 정부와 청와대 탓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남 탓을 잘하는 대통령이 권한을 넘어 정치개입을 한 국정원장이나 권한을 넘어 불법 사찰을 자행한 청와데 보좌진을 탓하는 말은 들어 보지 못하였다. 한 때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 말을 한 분은 지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다. 대통령에게 국정원장이나 비서실장은 남이 아닌가 보다.

이번 참사를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윤진숙 전 해수부 장관이다. 숱한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그이를 감싸기만 했다. 결국 그이가 물러난 것은 여수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를 두고 정유사가 일차 피해자, 어민은 이차 피해자라는 발언 때문이었다. 그이가 여전히 해수부 장관이었다면 과연 이번 참사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 설마 정부와 청와대가 일차 피해자이고, 희생자와 유가족들은 이차 피해자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믿고 싶지만, 하도 남 탓을 잘하는 정부이니 누구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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