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마음따라] - (6) 강영미와 함께 떠나는

   

 강 영 미
 작가. 전 외국어고등학교 교사

곰배령에서 굽이굽이 태백산맥을 넘어 동쪽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시간 내내 푸르른 신록들은 시선을 행복하게 만들었고, 바람타고 전해지는 꽃향기는 마음까지 감미롭게 흔들어준다. 청간정에서 삼일포를 바라보며, 정철의 관동별곡을 읊조리니 그야말로 신선이 된 느낌이다. 남쪽에는 다 져버린 아카시아 꽃들이 이제 막 피어나려고 버선코 같은 꽃잎을 펼쳐내기 시작했고, 그윽한 향기는 정신을 아득하게 휘감아 잠시 갈 길을 잊어버리고 앉았다.

송지호(松池湖)에서 보면, 풍수지리적으로 왕곡마을은 방주형의 배가 바다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형상을 하고 있다. 즉 만선(滿船)의 배가 마을로 들어오는 길지(吉地)이므로 한국전쟁 때나 고성에서 대형 산불이 났을 때도 이곳은 참사를 면했다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배 모양을 하고 있는 길지는 그 마을 내부에 우물을 파면 배가 가라앉는 의미였기에 예전에는 마을에 우물을 파지 않았고, 마을 중심을 흘러가는 시냇물과 산기슭의 샘물을 이용해서 사는 불편을 감수하기도 했다. 왕곡마을의 시작은, 고려말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반대하여 고려의 유신 72명이 두문동으로 들어간 사건에서 비롯된다. 두문동 72현(賢)의 한 분이셨던 양근 함씨 함부열이 간성으로 낙향 은거한 뒤로, 그의 손자 함영근이 왕곡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로 함씨 후손들이 대를 이어 600년째 집성촌을 이루며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19세기 전후로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 군락이 원형을 유지한 채 긴 시간 제대로 보존되어 왔기에 전통민속마을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1988년 전국 최초로 전통마을 보존지구로 지정되었다.

왕곡마을은 위치적으로 강원도의 동편 최북단에 속한 마을이기에 긴긴 겨울동안 혹독한 추위와 엄청난 폭설을 견디며 살아야한다. 따라서 가옥구조도 기후에 맞게 지어져 부엌을 중심으로 안방, 도장방, 사랑방, 마루가 이어지고, 외양간까지 부엌과 연결되어 키우는 가축들까지 추위로부터 보호하는 겹집구조를 하고 있다. 즉 혹한의 겨울에는 바깥으로 전혀 나가지 않고도 생활이 가능한 특이한 구조가 바로 이런 북방식 가옥구조이다. 또한 대문이 따로 없고 마당의 텃밭이 이웃집과의 간격을 유지하게 하고, 대문 역할도 한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이웃집이 고립되지 않았는지 서로 살펴볼 수 있는 개방형 구조인 것이다. 창 바깥쪽에는 한겨울 눈으로부터 창을 보호하기 위해 발처럼 생긴 멍석을 매달아 두었는데, 지금은 필요 없는 계절이라 돌돌 말아 올려 매어둔 모습이 눈길을 끌기도 한다. 처마를 깊게 만들어 눈이 많이 쌓이는 한겨울에도 처마 아래쪽에 농기구나 생활용품을 보관할 공간을 마련해 둔 것도 이채롭다. 집집마다 개성 있게 만들어 둔 굴뚝 또한 흥미를 유발하는데, 황토와 돌, 또는 황토와 기와 조각으로 튼튼한 굴뚝을 쌓아올려 꼭대기에는 항아리 하나를 거꾸로 엎어 두었다. 겨울에는 눈이 굴뚝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굴뚝을 타고 나간 불티가 혹시라도 옆의 초가에 옮겨 붙어 불이 나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과 항아리에 고인 열기가 다시 굴뚝을 타고 내려와 최대의 난방효과를 거두려는 추운 지방 사람들의 지혜로움이 담긴 굴뚝에는 은근한 예술성까지 숨어 있다.

왕곡마을은 백 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람들이 살아왔고, 아직도 살고 있는 공간이다. 정갈하게 가꾼 마당에는 온갖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개울가에는 아낙네가 빨래를 하고 있고, 마을 중앙에 있는 디딜방앗간에는 누군가 머릿수건을 쓰고 방아를 찧고 있는 곳, 백 년의 시간이 고여 있고 또 흘러가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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