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근, “죄 날조하는 시대로 돌아가선 안돼”

‘민청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던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이 28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서울고법 형사2부(김용빈 부장판사)는 2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1986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김 전 의원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조사 진술서가 형사소송법상 원칙을 어긴 위법수집 증거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관계자들이 대공분실에서 협박·강요·고문을 당했다며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며 “고문 등 당시 경험에 대한 이들 진술의 상세성, 당시 연행 과정에서도 영장 제시 등 적법한 절차가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함께 고려하면 위법한 수사가 이뤄졌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강요된 상태에서 한 진술은 실체적 진실에 대한 오판을 하게 할 가능성이 있어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라고 판시했다.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1989년 법률 개정으로 형이 폐지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 면소로 판결했다.

면소란 피고인이 사면되거나 해당 범죄 혐의에 관련된 법령 개정·폐지 등으로 형이 없어진 경우 소송절차를 종결시키는 것이다.

김 전 의원은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회(민청련) 의장으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 연행돼 20여일 동안 고문을 당하며 조사를 받았다. 그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1986년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의 형을 확정받았다.

고문 후유증으로 병상에 있던 김 전 의원이 2011년 12월 30일 사망한 뒤 아내인 인재근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이듬해 이 사건의 재심을 청구했다.

인 의원은 김 전 의원이 재심에서 국보법 위반 혐의 무죄를 선고받은 것에 대해 “간첩을 조작하고, 죄를 날조하는 시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재판을 방청한 인 의원은 “민주주의자 김근태라면 ‘재판부의 고민을 이해한다. 재판부가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라며 법원까지 감싸면서, ‘국민의 수준이 법원을 결정한다. 28년이 걸렸지만 이 역시 국민 덕분이다. 국민께 감사하고, 좀 더 힘내자’라고 우리를 위로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김 전 의원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를 면소 판결한 것에 대해서는 “집시법과 국보법 모두 무죄를 기대했는데, 집시법 면소는 아쉽고 섭섭하다”면서 “우리 법원과 우리 민주주의의 한계를 본 것 같아서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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