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천(吐天) 장종원 선생


 

사람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쓰임이 달라서 한 가지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일 가능성이 높다. 병차(兵車)는 성을 무찔러 무너뜨릴 수는 있어도 쌓을 수는 없으니, 그것은 기계의 쓰임이 다른 까닭이다. 모든 준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어도 쥐를 잡을 때는 삵만 못하니 그것은 재주가 다른 까닭이다. 또 올빼미는 밤에 벼룩도 잡고 털도 셀 수 있지만 낮에 나오면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산을 보지 못하니 그것은 성질이 다른 까닭이다. 그러므로 옳을 것을 주장하여 그른 것을 무시하고 다스림을 주장하여 어지러움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천지의 이치와 만물의 사정에 밝지 못한 사람이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주장하여 땅을 무시하고 음을 주장하여 양을 무시하는 것과 같아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항상 그것을 주장하여 버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리석음 아니면 억지로 떼를 쓰는 것이다.

도로써 보면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천하다고 할 수 없고, 귀천은 하나로 차별이 없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도로써 보아 무엇을 적다고 하고 무엇을 많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일러 다소의 차별이 없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연히 나라에 임금이 있어서 사사로운 덕이 없는 듯하고, 멀고 가까운 모양의 여러 가지 일이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면 사사로운 복이 오히려 없게 되며, 넓고 둥근 모양은 사방 끝이 없어서 그 경계가 없는 듯하며 만물을 함께 통으로 안았으니 어느 하나를 차별하여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특정한 방향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만물이 모두 하나로 가지런하기 때문에 어느 것을 짧다고 하고 어느 것을 길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는 원래 시작과 끝이 없지만 사물은 생성과 소멸이 있다. 그러나 그 사물의 생멸은 도가 한 때의 변화하는 것으로서 믿을 것이 못 되는 것이고, 때로는 비어 있고 때로는 가득 차니 그 형상의 일정함이 없는 것이다. 떠오르는 해를 돌려보낼 수 없고 흐르는 시간은 잡아둘 수 없는 것이니 쇠퇴하고 번성하며 차고 비어서 하나가 마치면 또 하나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도의 법칙을 말하는 것이고 만물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대개 사물이 생기면 그 변화는 빨리 움직여서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때를 따라 옮기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니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없고, 오직 조화로운 자연에 맡겨 변화해 갈 뿐인 것이다.

도를 아는 사람은 반드시 우주의 이치와 통하고 우주의 이치와 통한 사람은 반드시 사물의 변화에 따라 반응하는 방편에 밝고 사물의 변화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에 밝은 사람은 바깥 사물로써 자기를 해치지는 않는 것이다. 지극한 도를 얻은 사람은 불이 그를 뜨겁게 하지 못하고, 물에 그를 빠지게 하지 못하며, 주위가 더위도 그를 해치지 못하고 짐승도 그를 침노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업신여겨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편하고 위대한 것을 밝게 살피고 화와 복에 편안해 하여 나아가고 물러남을 삼가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해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말에도 자연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사람과 방편은 밖으로 드러내 보인다고 한 것이다. 자연 또는 하늘의 참됨에 근본하고 있는 덕이 있으면 자연과 사람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의 도에 기초해서 덕이 편안할 때는 때로는 나아가고 혹은 물러나며 또는 움츠리고 다시 펴서 항상 도의 중심에 돌아가서 이치의 극치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소나 말이 발이 네 개인 것을 자연이라 하고 말 머리를 얽매고 쇠코를 뚫는 것을 인위라고 한다. 그러므로 옛말에도 인위로써 자연을 망치지 말고, 의도를 가지고 하늘의 이치를 잃지 말며, 덕으로써 사람의 일에 따르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삼가 지켜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참으로 돌아감이라고 한 것이다.

대개 지혜가 옳고 그름의 경계를 알지 못하면서 장자의 말을 알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모기에게 산을 지우고, 노래기에게 바다를 건너가라고 하는 것과 같아서 도저히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지혜가 지극히 묘한 말을 이야기할 줄을 모르면서 한 때의 말 재주로써 스스로 유쾌해하는 사람은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장자의 말은 지금 진리의 깊음을 밟고 진리의 높음에 올라 있다. 거기에는 남쪽도 없고 북쪽도 없어 자유롭게 풀려 사방으로 뻗어가 아득하여 헤아릴 수 없는 곳에 잠기어 있는 것이다. 또 거기에는 동쪽도 없고 서쪽도 없어 우주의 본원에서 비롯하여 대도에 돌아가 있는 것이 자연의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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