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몸집에 자신감 넘치는 친근한 표정. 귀공자 타입은 아니다. 정백운 에버테크노 사장의 첫인상이다. 가난했던 ‘공돌이(엔지니어)’로 시작해 수천억원을 주무르는 사업가로 성공한 그의 성공 열쇠는 한번 사귀면 끝까지 이어가는 ‘신의’와 ‘사람을 귀히 여기는 천성’에 있다. 차라리 내가 손해 보고 만다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다. 그래서인지 그를 돕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 있다. 당장은 정 사장이 손해 보는 듯해도 결국 상대방이 모든 걸 스스로 내놓는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뭔가 주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이런 것이 쌓이고 모여 그를 창업한 지 8년 만에 매출 1400억원대를 바라보는 중견기업인으로 자리 잡게 했다. 전문 ‘엔지니어’로 뼈를 깎는 노력이 뒷받침됐다. 특히 시류를 꿰뚫어 보며 시의적절하게 투자하는 직관력은 거의 ‘동물감각’ 수준으로 맨바닥에서 현장 엔지니어로 터득한 노하우에서 비롯된다. 지난 주 정 사장을 회사에서 만나 초고속 성장세를 이어가는 인생 역정과 경영 노하우를 들여다봤다.

# ‘One&Only, First, Best’

에버테크노 본관 입구에 걸려 있는 사훈이 ‘One&Only, First, Best’다. 전 세계에서 하나이자 유일한 제품, 최초의 제품, 최상의 제품을 만들자는 슬로건이다.

이 회사는 이 슬로건에 맞는 제품을 다량 보유했다. 주력 품목인 LCD 장비는 품질이나 서비스의 가격 대비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best)이다. LCD 후공정 부문의 제품 공급은 탕정 삼성전자를 기반으로 거의 독점성(only)을 고수한다. 일본과 대만에 수출하는 LCD 편광필름 검사기는 세계 최초(first)다.

정 사장은 “외국업계의 슬로건을 벤치마킹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우리가 하고자 했던 것”이라며 “제품의 경쟁력 차원에서 우리만 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는 취지로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시설과 투자, 인프라는 모두 사람이 하는 것. 정 사장은 특히 1등 제품 생산에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인적자원을 귀히 여기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퇴직자가 거의 없다. 세 명의 창업멤버가 8년 전 그대로다. 특히 핵심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일꾼’들이 지금도 함께한다. 툭 하면 갈라서고, 재창업하는 여느 기업과 다른 점이다.

서로 간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정 사장의 지론이 그들을 끈끈하게 엮어내고 있다. 직원이 경영이나 근로의 대상이 아니라, 모두가 동업자라는 인식이다.

문제가 생기면 논의를 거쳐 합리성과 원칙에 따라 처리한다. 상호 신뢰의 바탕이 됐다.

# “교육이야말로 능력을 배가시키는 원동력”

직원 능력이 부족할 땐 지도와 설득, 교육으로 보완한다. 항상 자기계발 기회를 준다. 다른 회사에 비해 교육시간이 많은 이유다.

“삼성에서 13년을 근무하면서 따져 보니, 교육만 365일 넘게 받았더군요. 그만큼 교육이 중요한데, 중소기업에서는 일하기 바빠 교육을 등한시하기 십상입니다. 참 안타까웠습니다.”

정 사장은 직원 오리엔테이션이나 인성 교육, 기술 교육 등이 대기업에 비해 아직 적다고 본다. 개개인의 능력과 지식이 높아질 때 제품의 경쟁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는 지론 때문에 교육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래서 에버테크노는 직원 해외 연수를 많이 보내기로 유명하다. 도요타 생산시스템(TPS), 선진 전시회 등에 연간 50명 이상씩 몇 회에 걸쳐 보낸다. 1인당 비용이 150만원 이상 들지만 본 것을 제품 개발에 응용하면 1인당 투자액보다 10배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한국기술교육대학과는 아예 노동부의 지원으로 협약을 맺어놓고 집중 교육한다. 다른 중소기업에 비해 교육 투자가 3∼4배는 족히 된다. 처우와 복지는 기본이다. 처우와 복지에서 베스트 상품이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병원비, 학자금지원, 자녀교육비 등 일상 복리후생이 동종업계 최고다.

“채용 시 연봉을 깎는다든지, 적게 줄 생각을 안합니다. 차라리 일을 두 배 이상 더 열심히 하는 게 회사나 개인에게 더 낫기 때문입니다.”

인센티브도 파격적이다. 상·하반기 두 차례로 나눠 개인과 부서, 팀별로 평가를 통해 상여금을 지급한다. 인센티브는 자칫 직원 간 위화감을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공개를 잘 하지 않는다. 정 사장은 그러면서도 실제로 영업 부문에서 월급의 몇 배가 보너스로 나간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 문제를 즐기는 경영의 달인

정 사장의 경영스타일은 어떤 사안이 발생하더라도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심사숙고하지 않거나 대비책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정 사장은 ‘싸움은 준비된 자가 이긴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사안이 생기면 오히려 전투적으로 바뀐다. 오히려 싸움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향후의 경제 및 금융 동향, LCD 장비 산업의 전망과 하다못해 시사 부문과 전문지식을 모두 꿰차고 있어야 한다. 지나고 나서 시행착오가 생기지 않으려면 시사에도 조예가 깊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조직과 규모가 매출 100억원일 때와 500억원, 1000억원, 3000억원, 5000억원일 때마다 시스템이 달라야 합니다. 100억원 생산 능력으로 3000억원대 규모의 운영이 안 되는 이치와 마찬가지죠.”

정 사장은 이에 따라 올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가기 위한 내부 시스템과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맨바닥에서 창업해 매출이 5000억원대나 1조원대로 올라간 기업이 거의 없다는 것.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점프 업’ 프로젝트에 경영진과 머리를 맞대고 숙고 중이다.

더욱이 내년 반도체와 LCD 부문 전망이 안 좋게 나오는 것도 대비책 마련에 고심하는 요인이 됐다.

“큰 회사로 가기 위해 최고의 회계 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혈관이 원활해야 건강한 사람이듯 기업 시스템을 원활히 하기 위해선 최상의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회계관리 시스템을 손보고 있는 이유다.

#자부심과 신의가 최대 경쟁력

정 사장의 경쟁력은 대한민국 최고의 엔지니어라는 자부심에서 나온다. 창업 때부터 초지일관 그래왔다.

생산과 기술개발, 시스템 설계 부문에서 국내 1인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서러울 정도. 25년간 한우물만 판 결과다.

정 사장은 LG전자에서 10년간 기술의 기본을 배웠다. 은인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삼성전자에서 생활하며 프로젝트의 달인이 됐다. 미래산업에서 2년간 장비 기술도 익혔다.

여기에 덧붙여 사람과의 ‘인연’이 오늘의 에버테크노의 자양분이 됐다고 설명한다. 베풀고, 양보하고, 손해 보다 보니 일감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들고 와서 의뢰하는 건수가 많다. 쉬운 말로 ‘돈’이 저절로 붙는 스타일이다.

“2000년 말 자동화 테스트 장비를 리콜한 적이 있어요. 이 때문에 7억원을 빚지게 됐죠. 대부분은 책임을 뒤로하고 빼지만, 전 달리 봤습니다. 오히려 기회라고 본 거죠.” 최선을 다한 신속한 서비스를 인정받아 이때부터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12명이 78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 자금은 시드머니가 됐다. 이후 직원이 30명, 100명으로 갈수록 늘었다. 현재는 380명이다.

투자에 대한 직관도 탁월하다.

“당시 충남테크노파크에서 300여평을 임대해 쓰다가 4200평짜리 용지를 사서 나왔습니다. 7600평으로 늘려 공장을 추가로 짓자고 했더니 반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밀어붙였죠. 당시 LCD 시장 증가는 불 보듯 뻔했고, 지금이 투자할 적기라고 판단한 거죠.”

이 일로 주위에서 말을 걸지도 않을 정도로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는 정 사장. 그러나 지금은 정 사장에게 ‘배짱’ 있는 큰 사업가라는 이름이 붙어다닌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천성도 정 사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뭔가 끊임없이 개선하고, 바꿔 나가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격증이 4개나 된다. 지난 74년 정밀가공선삭 자격증을 따 장학금으로 고등학교를 다녔고, 이후 중등고교 교원 자격증과 품질관리기사 1급, 용접 기능사 자격증 등을 땄다.

# 2013년 매출 7000억원을 꿈꾼다

정 사장은 올해 매출 규모를 1400억∼1500억원으로 예상한다. 지난해에 비해 비약적인 성장세다.

에버테크노는 올해에만 로봇 CS(Customer Service) 전문회사인 에버이엔지와 LED 시장 진출을 위한 에버브라이튼 인수,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에버시스 지분 참여를 통해 3개 기업을 계열사로 거느렸다. 근간은 LCD 자동화시스템(FA) 장비 전문기업이다.

에버테크노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조만간 3개 법인을 추가로 설립할 예정이다. 에버테크노는 지주 회사로서 LCD 등의 장비전문 베스트 컴퍼니로 육성할 방침이다. 현재 염두에 두고 있는 부문이 태양광과 모바일·LCD TV의 핵심부품, 해외친환경 자원 개발 3개다. 모두 올해 내 설립을 끝낸다는 복안이다.

특히 친환경 관련해 이미 일본 업체와 청정개발체계(CDM)와 관련한 탄소배출권 확보를 위해 MOU를 교환해 놓고 있다. 타깃은 베트남이다.

LCD TV 등에 들어가는 FPCB 부품 등을 새로 개발, 특허도 출원했다. 이 부문에서만 내년 500억원, 오는 2010년 1000억원대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에버테크노는 이를 기반으로 내년 2000억원, 오는 2013년 7000억원의 매출 목표로 세워놨다.

정 사장은 “회사를 많이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고, LCD로만은 매출 2000억·3000억원 되기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LCD를 근간으로 사업의 전략적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으로 봐도 좋다”고 말했다.

# 정백운 사장은

1956년 대전 대덕구에서 태어났다. 농사를 짓는 집안에서 6남매의 셋째로 어렵게 공부했다. 중학생 때 받은 적성검사 결과가 기술자로 나와 부모님께서 기술자가 되라고 한 일이 고교의 방향을 결정했다. 당시 고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을 한창 육성하던 시절, 일반 인문계 고교보다 더 잘나가던 충남기계공고에 들어갔다. 이때 특별한 분야의 유일무이한 기술자가 되고자 마음먹었다.

이후 LG정보통신에서 10년간 재직하며 오산공업전문대학에서 기계설계를 공부했다. 이어 98년까지는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며 한국방송대학교에 편입학했다. 2000년까지 미래산업 반도체 장비 개발팀장을 맡아 2년간 재직한 뒤 에버테크노를 창업했다.

2002년엔 성균관대학교 과학기술대학원 산업공학과 석사학위를 받고, 지난해에는 같은 대학의 일반대학원 산업공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상도 많이 받았다. 삼성전자 재직 시 모범 간부상과 한국산업기술대상, 충남벤처기업대상, 호서대 벤처기업대상, 충남도 기업인대상, 최우수아카데미상 등 10여개가 넘는다.

50대가 끝나기 전에 조원 단위의 매출을 올려보는 게 정 사장의 꿈이다. 천안=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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