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춤, 그 투박한 속 멋

부산의 전통무용가와 비보이가 만났다. 지역 춤꾼들을 통해 부산 문화를 짐작해보기위해서다. 원로예술가 김진홍 춤 역사의 자취를 통해 부산문화의 깊이를 돌아보고 청년예술단체 킬라몽키즈와 함께 지역의 청년문화를 살펴본다. 또한 원로와 청년의 만남에서 세대를 넘어서고 시대를 이어가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세대와 장르는 다르지만 이들 춤꾼들은 작은 춤사위 하나에도 공감대를 만들 수 있었다. [편집자 주]

- 투박한 춤사위에 스며있는 따뜻한 품성

예로부터 ‘호남의 소리의 고장이요 영남은 춤의 고장이다’라고 일컬어졌다. 춤의 고장 부산에서 활동해오며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른 한국 전통춤의 거장 김진홍과 스트릿 댄스팀 ‘킬라몽키즈’의 30대 비보이들을 만났다. 다른 장르, 다른 세대의 춤꾼인 이들은 부산 춤을 이야기하며 한결같이 무뚝뚝한 투박함을 특징으로 꼽았다. 진한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는 부산의 춤은 무심한 듯 꾸미지 않은 춤사위 속에 따뜻하면서도 묵직한 힘을 가지고 있다. 미학자 채희완은 “부산춤은 덧배기가락의 지신밟기로서의 매구성과 개방성, 강인함과 텁텁하고 활달한, 거침없는 신명의 춤”이라 평했다.

 

부산문화는 대륙성과 농경성 그리고 해양성이 혼유된 문화적 솟터. 용광로이다. - 미학자 채희완

  대담

 일시 : 2014년 4월1일

 장소 : 국립부산국악원

 참석자

 김진홍(79) - 부산시지정 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 한량무’ 예능 보유자

 ‘킬라몽키즈’ - 양문창(30), 김지현(31), 김태록(30), 최창원(29)

 

   
▲ 한 무대에서 포즈를 취한 김진홍, 킬라몽키즈

- 그들, 만나다.

김진홍선생의 공연이 있던 날 선생의 리허설 연습을 넋을 놓고 지켜 본 비보이들과 선생이 한자리에 마주 앉았다.

비보이 “선생님을 이렇게 직접 뵙고 춤까지 볼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선생님께서 리허설을 위해 부축 받으시며 무대에 오르실 때 걱정도 했었는데 막상 음악이 나오고 춤이 시작되니 전혀 달라진 선생님의 모습에 놀랐습니다. 에너지를 분산하지 않고 안에 가지고 계시고, 미세한 정지동작과 움직임의 흐름까지 정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김진홍 “방송을 보면 우리나라 비보이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던데 참 자랑스럽습니다. 너무나 열심히 하고 이해타산 없이 순수하게 춤이 좋아하는 그 열정이 참 좋아요. 가끔 힙합을 폄훼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시대에 뒤떨어진 겁니다. 내가 나이 60살만 되었어도 힙합 기본을 배우고 싶은데 기회가 없었어요. 참 아쉬워요”

비보이 “장르가 다른데도 저희가 하는 비보이 춤 동작 기법들을 선생님 춤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김진홍 “내가 생각하는 춤은 일단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연습실에서는 잘하려고 해도 무대에 올라가면 버려야 해요. 욕심을 버리려면 몸에 힘을 빼고 찰나의 순간에 힘이 뻣쳐 나올 때 멋진 춤이되요. 힙합도 마찬가지 아닌가? 힙합이 흑인의 한을 담은 춤이고 우리나라 전통춤 살풀이도 한을 담고 있지요. 비보이 연습을 보면 참으로 치열하더군요. 고통을 수반하는 춤이고 춤 출 때 고통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춤이지요. 승무와 같은 전통춤에도 그런 부분이 있답니다. 그런 아픔을 알아야 하고, 헝그리 정신도 알아야 예술을 할 수 있지만 여러분들은 헝그리정신도 알고, 아픔도 겪었으니 이제 좀 편안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춤 출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비보이 “ 비보이가 외국에서 시작된 춤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추어지며 지역마다 약간의 특성이 있습니다. 서울은 테크닉을 중시하고 섬세하고 세련되고 꾸며서 춤추는 반면 부산 비보이들은 심플하고 에너지 위주입니다. 단순하달까 투박하고 대충 추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만들어서 보여주기보다 ‘즐긴다’는 마음으로 춤추는 편입니다. 우리에게는 다 똑같아 보이는 전통춤도 지역마다 차이점이 있습니까?”

김진홍 “그 차이가 있는 건 어쩔 수 없지 재치 있는 서울사람들은 관객이 좋아하는 춤으로 잘 맞추어 공연하지만 무뚝뚝한 부산사람은 좋아해도 표현을 잘 못하는 성정처럼 관객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염두에 두고 공연하지 않아요. 투박하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자랑스럽게 여겨야 해요. 부산 춤은 ‘무게가 있다’는 말을 들을 때 좋은 춤입니다.”

비보이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예술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

김진홍 “예술은 단순미예요. 복잡한 매커니즘 보다 단순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해요. 춤추는 사람은 연습이 스승입니다. 추는 춤이 있고 추어지는 춤이 있는데 무수한 연습으로 인해 추어지는 춤이 진짜 춤입니다. 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쉬가 ‘어떻게 움직일까 보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가’라고 했는데 내게 너무나 와 닿는 말이예요. 스승에게 배웠던 춤만 고집하면 관념에서 탈피할 수 없어요. 배울 때는 스승의 춤을 따라 추지만 배우고 나면 나의 춤을 춰야지.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머리로 배운 춤이 되어버리지 춤은 몸으로 추는 것이지요.”

비보이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저희들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힘든 일상과 반복되는 공연과 연습에 지쳐있던 저희들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상반된 장르지만 동작만 다를 뿐 춤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춤과 저희가 생각하는 춤이 매우 비슷해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에게는 힐링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진홍 “요즘은 모든 게 합쳐진 하이브리드 시대입니다. 힙합과 전통춤, 전통음악의 만남이 이루어져서 세계적으로 한국적인 힙합을 선보이면 좋겠습니다. 평소에 비보이와 함께 연습해서 그런 공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보이 “그 공연에 저희를 꼭 불러주십시오. 오늘 선생님을 뵙고 긍정의 힘을 받았습니다. 말씀하시는 에너지, 열정이 실제 선생님의 춤과 일치하는데 놀랐습니다. 앞으로 부산에서 계속 춤추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과 비보이들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같으면서도 다른 각자의 춤을 추기 위해 돌아섰다. 오늘의 만남이 연습실로 이어져 김진홍선생과 비보이가 함께 만드는 멋진 공연이 되기를 기대한다.

 

   
▲ 김진홍 '동래한량무'

- 시대정신이 살아있어야 한량이다.

부산문화, 부산性을 대표할 수 있는 예술가를 이야기한다면 주저 없이 그가 떠오른다. 김진홍

명무를 꼽을 때 항상 빠지지 않으며 한국전통춤을 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색깔과 함께 부산춤의 특성이 짙게 배어있다.

 15살에 시작한 춤 인생. ‘반병신이 되어도 좋으니 춤만 잘 추게 해달라’고 빌며 지독한 연습으로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명무이며 한국 춤계의 존경받는 어른이시다. 그런 선생이 ‘춤은 추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시인은 글을 섬길 줄 알고 춤꾼은 춤을 섬겨야 해요. 춤이 돈이나 권력을 위한 도구가 되면 안되지. 삶이 묻어나야지. 춤은 말로 가르치기 힘들어. ‘이심전심’으로 느낌, 멋은 캐치해야지. ‘추는 춤 말고 저절로 추어지는 춤’ 몸에서 우러나와야 해요. 어떤 것이 잘 추는 춤인가... 비우고 추는 춤, 안 추는 춤이어야 해요. 관객의 몫이 있어야 합니다.”

 한량무를 출 땐 박목월의 ‘나그네’를 맞아들이고
승무를 돌땐 조지훈의 ‘승무’를 사뿐이 즈려밟고 학을 타며
살풀이를 휘감을 땐 노천명의 ‘사슴’을 맞아 모가지를 어루만진다

 열다섯살 춤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부산에서 춤을 추고 있는 선생에게 부산춤을 물었다.

 “언어도 지역마다 사투리가 다르지요. 부산 말씨는 무뚝뚝하고 무겁고 투박하며 정감이 있지요. 춤도 무거워요. 투박함 속에는 따뜻함이 있어요. 이것이 내재율 이지요. 내재율이 있는 예술은 ‘속 멋’이 있어요.”

 부산시지정 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 한량무’ 예능 보유자인 선생의 전통춤은 박제화된 고전이 아니라 21세기인 오늘을 살고 있는 춤이라고 한다.

 “전통도 시대를 무시할 수 없지요. 한량이란 벼슬을 외면하고 세상을 등지고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의식 있으면서 풍류를 아는 선비입니다. 지금이라면 자연파괴, 부정부패 등을 싫어하겠지요. 아웃사이더, 비판정신이 살아있어야 한량이라 할 수 있지요. 전통예술도 시대정신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 킬라몽키즈

- 용골을 아는 그대, ‘힙합고 D반’을 아시나요?

지금은 비둘기, 중국 관광객 그리고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부산 중구에 위치한 용두산공원은 한때 ‘용골’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비보이들의 성지와 같은 역할을 할 때가 있었다. 97년 즈음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그 곳에 가면 비보이 댄스를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비보이는 어디서 춤추고 있을까? 북구 구포동에 위치한 창조활력센터 ‘스트릿 624’로 비보이를 찾아 나섰다.

모든 스트릿 댄스 장르는 물론 기획, 의류, 헤어 디자인과 사진, 영상뿐만 아니라 음악, 랩, 보컬까지 스트릿 문화를 이끌려는 이들이 모인 스트릿 컬처 크루이자 컴퍼니라고 길게 자신들을 소개하는 ‘킬라몽키즈’ 멤버들을 만났다.

 “킬라몽키즈는 2001년 개방형 연습실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고교댄스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은 연습 공간 만들자는 의견을 모았어요. 작은 공간을 대여하고 온라인상에 연습실을 같이 사용할 친구들을 구하고 임대료를 나누어 내며 연습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계속 함께 춤추는 몇몇이 모여 팀을 만들었어요. 연습실이 사하구 당리동이라 ‘DL크루’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어떻게 유난히 부산에서 비보이 댄서가 많이 배출되고 활동이 활발했을까?

 “당시는 용두산공원에서 신청만하면 누구나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제약 없이 공연할 수 있었고 구청단위 등에서 청소년댄스 대회도 자주 열려서 비보이들이 자주 만나며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비보이 층이 두터웠고 단합도 잘되었어요. 지역성일 수도 있는데 서로 간에 끈끈한 정이 있었어요. 단합이 잘되니 용두산공원을 중심으로 커뮤니티 공간이 형성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 청소년이었던 그들은 이제 30대가 되었고 역사가 짧은 비보이계에서는 원로라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한다. 당시 활동하던 그 많던 비보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는 취미를 넘어 프로 춤꾼이다.

 “2000년대 초까지 용두산공원 주변에만 20여팀의 100명 이상의 비보이들이 모였지만 대부분 경제적, 가정적 이유로 그만 두게 되죠. 군대를 다녀와서도 계속 춤추는 경우는 거의 드물어요. 저희도 군 제대 후 다른 일을 했었지만 행복하지 않아서 지금은 이렇게 춤추고 있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갔어요. 윗세대들이 계속 서울로 가버려 부산 비보이 역사가 없어져요. 그런 서울 집중의 반복이 싫었어요. 후배들 앞에 선배가 이렇게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미국에서 시작되어 한국으로 전해진 비보이 춤에도 각 지역의 특성이 드러난다고 한다. 많은 선배, 동료, 후배들이 서울로 가지만 이 곳을 지키는 비보이들은 이 지역의 비보이춤을 이야한다.

 “부산 비보이들은 겁없이 몸을 던져요. 스핀 위주의 파워 무브를 구사하죠. ‘남 눈치 보지 말고 내가 즐겨라’고 해요. 투박하고 대충하는 것 같지만 제대로 놀고 즐기려고 해요. 그리고 요즘은 예전만큼 무조건 서울로 가지는 않아요. 각 지역 거리가 멀어도 인터넷과 각종 매체의 발달로 소통이 원활하고 여기서도 얼마든지 춤을 배우고 다른 지역 춤을 보고 알 수 있어요. 그러니 굳이 비싼 생활비 들이고 가족과 떨어져 있으며 서울로 갈 이유가 없죠. 오히려 요즘은 서울로 갔던 비보이들이 하나 둘씩 지역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춤춘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이 들은 비보이로 늙어가기를 꿈꾼다.

 “학원에서 춤을 가르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예술을 하고 있죠. 30대가 되니 바라는 게 있다면 자급자족하고 싶어요. 예술 활동으로 돈을 벌어 소박한 생활이라도 가능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스폰서를 받거나 기획자에 휘둘리며 활동하고 싶지 않아요. 비보이로서 지속가능한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여기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킬라몽키즈도 춤 이외에 여러 가지 스트릿 아트 활동을 하고 있고, 이 곳 북구에서 지역민들에게 공연을 보여주거나 춤을 가르쳐주며 앞으로 할 일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회적기업인 킬라몽키즈는 ‘힙합고 D반’이라는 비보이 춤을 기반으로 한 뮤지컬 형식의 부산 최초 댄스컬을 만들어 벌써 시즌 3회까지 기획, 제작, 공연하고 있다. 또한 미국 뉴욕 3on3 Bboy Competition 2nd Price 공연, 미국 뉴욕 타임 스퀘어 광장 "Street Rockers" 합동 공연 등 세계에 나아가 활동하며 인정받고 있다. 비보이는 남의 춤의 흉내를 넘어 용두산공원에서 꽃을 피워 스스로 창작 작품을 계속 만들어 나가는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예술가들이었다.

 킬라몽키즈 연혁

2013년 부산 북구 창조 문화활력 센터 ‘스트릿 624’ 입주

2012년 부산시 사회적기업 선정 (문화소통 단체 "숨")

2010년 미국 뉴욕 타임 스퀘어 광장 "Street Rockers"

2010년 미국 뉴욕 3on3 Bboy Competition 2nd Price

2007년 창작 스트릿 댄스컬 “댄스오브소울”

2007년 스트릿 댄스컬 “힙합고 D반” 시즌 시작

2005년 “킬라몽키즈" 개명

2001년 스트릿댄스팀 “디엘크루" 창단

 

김진홍 연혁

현재 부산시지정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 한량춤 예능 보유자

(사)우리춤협회 고문

(사)한국무용협회 부산지회 고문

부산민속예술 보존회 이사

2008년 부산예술상대상

1991년 한국무용협회 이사 역임

1987년 부산광역시 문화상 수상

1983년 제 9회 전주 대사습 무용 부문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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