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동해항에서 미국에서 수입된 쌀이 하역되고 있다. (연합뉴스 DB)

(세종=연합뉴스) 김승욱 전성훈 기자 = 정부가 올해 9월 세계무역기구(WTO)에 쌀 시장 개방 여부를 통보하기 전에 관세율 등 핵심사안을 국회에 보고하고 동의절차를 밟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16일 WTO에 수입 쌀에 적용할 관세율 등을 정리한 수정 양허표(Schedule of Concessions)를 제출하기 전 국회에 먼저 보고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통상업무를 하면서 국회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쌀 시장 관세화 문제는 국회 비준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어 임의로 국회 동의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쌀 시장을 개방(관세화)하기로 결정하면 올해 9월까지 WTO에 수정 양허표를 제출해야 한다.

WTO 사무국은 한국 정부가 제출한 양허표에 대해 회원국의 동의를 받는 절차에 착수하고 이 절차가 마무리되면 사무총장 명의의 인증 서류를 한국 정부로 보내게 된다.

이후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WTO 사무국의 인증 절차에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보다 먼저 쌀 시장을 개방한 일본은 WTO 인증을 받는 데 2년이 걸렸고 대만은 5년이 걸렸다.

반면 정부가 WTO에 수정 양허표를 제출하면 관세화 유예기관이 끝나자마자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즉, 정부가 WTO에 쌀 시장 개방 의사를 전달하면 국회의 비준 여부와는 관계없이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 1월 1일부터 쌀 시장이 개방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국회의 비준동의권이 사실상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정부는 국회 동의 절차를 밟기로 한 것이다.

   
 

다만, 산업부 관계자는 "반드시 국회 사전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 아닌 만큼 여기서 말하는 동의는 국회의 허락을 받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회에 보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쌀 관세화가 국익에 더 유리하다는 공감대가 국회 내에 상당 부분 있는 만큼 아예 협의가 되지 않을 사안은 아닐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쌀개방 동의를 얻어내기까지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농해수위 야당 간사인 김영록(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정부가 쌀 시장 개방에 따른 농민피해 대책을 마련하고 농민과 농민단체를 설득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뒤 국회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정부가 그런 노력을 안 하고 있다"며 "국회로 공을 떠넘기려는 속셈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시민단체도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식량주권 운동본부' 출범식을 개최하고 쌀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아직 쌀 시장 개방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나 협상이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정부는 벌써 고율관세화를 운운하며 쌀 시장 개방을 준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 타결로 모든 상품시장을 개방할 의무를 지게 됐으나 쌀은 그 특수성을 고려해 1995년부터 2004년까지 일정량(최대 국내 소비량의 4%)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대신 시장개방을 10년간 미뤘다.

이후 2004년으로 쌀 관세화 유예가 종료됐으나 우리나라는 재협상을 벌여 의무수입물량을 국내 소비량의 7.96%에 해당하는 40만8천700t까지 늘리기로 하고 10년 뒤인 2015년에 쌀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올해 9월까지 WTO에 쌀 시장 개방 여부를 통보해야 하는데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6월까지는 정부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또 "쌀 시장을 개방하기로 하면 핵심은 관세율이 될 것"이라며 "대체로 300∼500%의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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