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생태문화기행] - (10) 범어사 자연생태

   
 강판권 교수계명대 사학과 교수
 1981년 계명대 입학
 1999년 경북대 박사학위
 ‘나무열전’ 등 14권 저술
 

부산 동래 금정산에 위치한 범어사는 부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범어사는 우리나라 조계종 중 금정총림이다. 총림(叢林)은 참선 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 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 교육기관인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춘 것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총림은 가야총림 해인사, 조계총림 송광사, 영축총림 통도사, 덕숭총림 수덕사, 고불총림 백양사를 비롯하여 최근에 지정한 금정총림 범어사, 팔공총림 동화사, 쌍계총림 쌍계사 등 8곳이다. 범어사가 총림으로 지정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조계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림은 대학과 비교하면 종합대학에 해당한다. 범어사는 전국 각지의 불교 신자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특히 범어사가 총림으로 지정되면서 찾는 사람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범어사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을수록 총림의 실현은 어렵다. 사람들이 범어사를 비롯해 사찰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불교의 참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있지만, 찾는 사람들 중에 불교의 참 뜻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다. 대부분 잠시 건물을 보거나 부처님께 절하는데 그칠 뿐이다. 이처럼 총림을 비롯한 한국의 사찰이 수도 도량의 가치를 상실하고 그저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는 데는 사찰을 관리하는 스님들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차례 범어사를 찾았지만 가장 먼저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범어사(梵魚寺)의 이름에 ‘물고기’가 들어간 사실에 주목한다. 사찰의 물고기는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 등 불전사물(佛殿四物) 중 목어에 해당한다. 불교에서 물고기를 중시하는 것은 잠을 자면서도 눈을 뜨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범어사처럼 사찰의 이름은 거의 예외 없이 불교의 사상을 담고 있다. 범어사를 비롯하여 한국 사찰의 높은 가치 중 하나는 수준 높은 자연생태이다. 만약 수준 높은 자연생태가 아니면 한국의 사찰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평가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의 사찰을 방문할 경우에는 가장 먼저 주변의 자연생태와 만나야 한다.

   
 

범어사 주변에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보기 드문 등나무군락(천연기념물 제176호)을 만날 수 있다. 등나무군락은 강화도 전등사를 비롯해 전국의 사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범어사의 등나무군락은 면적도 넓을 뿐 아니라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 경북 청도군 적천사 등지에서 보듯 주로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지만, 천연기념물 등나무군락은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범어사를 찾는 사람 중에서 천연기념물 등나무군락을 찾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이런 현상은 등나무의 생태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콩과의 등나무는 다른 나무에 기생하는 나무라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에 사는 등나무의 경우 늘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그런데도 이곳의 등나무가 군락으로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아주 높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등나무의 기생성을 강조하면서 생명을 홀대한다. 그러나 모든 독립수의 나무들도 크게 보면 기생성을 띠고 있다. 그래서 어떤 생명체든 독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 중에는 유독 등나무처럼 덩굴성 식물에 대해서는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분명 덩굴성 식물에 대한 지나친 편견이다.

   
 

범어사등나무군락에 들면 햇볕이 잘 들지 않을 만큼 울창한 숲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서어나무, 층층나무, 소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살지만 낙우송과의 삼나무가 숲의 우두머리처럼 찾는 사람을 압도한다. 삼나무는 일본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그래서 이곳의 삼나무는 지금은 옮겼지만 범어사 내의 낙우송과의 금송과 더불어 일제의 잔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범어사의 금송과 삼나무는 우리나라 전통 사찰에 어떤 나무를 심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좋은 사례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역사이자 문화라는 사실을 인식했다면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국에는 범어사와 같은 사례가 아주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렵다. 삼나무는 일제강점기 때 수입한 남쪽 지방을 대표하는 나무이다. 일본 목조건물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삼나무의 특성을 알아야 하고,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가 판옥선과 거북선으로 일본의 배와 싸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소나무로 만든 우리나라의 병선이 삼나무로 만든 일본의 병선보다 우수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아야만 한다.

나는 등나무를 보는 순간 갈등(葛藤)을 연상한다. 갈등의 단어가 칠과 등나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칡은 오른쪽으로 감아서 올라가는 반면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두 종류의 이러한 생태가 얽기 설기 갈등과 같은 모습이다. 불교 용어 중 ‘갈등선(葛藤禪)’이 있다. 이는 종지(宗旨)를 알지 못하고 말에만 팔리는 선객(禪客)을 비방하는 말이다. 이처럼 등나무는 선불교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나무이다. 우리나라의 불교 조계종은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완성한 중국의 선종이며, 혜능의 제자인 의현(義玄)의 임제종(臨濟宗)이다. 혜능이 스승인 오조(五祖) 홍인(弘仁)에게 자신의 깨달은 바를 알린 게송(偈頌)에도 나무가 등장한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菩提本無樹
맑은 거울은 또한 받침대가 아니다./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本來無一物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가 일겠는가./ 何處惹塵埃

견성성불(見性成佛)은 불교사상의 핵심이다. 인간의 본성은 애초부터 청정한 거울이다. 자기 자신이 불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만 알면 곧 부처이다. 부처는 나무와 거울 받침 같은 것에 기대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처라는 사실을 깨달아 이루는 것이다. 범어사의 등나무와 삼나무를 스승으로 삼아 깨달음에 도달할 것이 아니라 등나무와 삼나무 자체가 부처라는 사실을 통해 자신도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등나무가 다른 나무에 기대어서 살아가는 것도 성불이고, 등나무를 감고 살고 가는 존재의 삶도 성불이다.

삼나무가 곧았기 때문에 본성이 곧은 것이 아니고, 등나무가 굽었다고 본성이 굽은 것이 아니다. 굽은 나무든 곧은 나무든 본성은 맑고 깨끗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곱고 굽은 것을 기준으로, 키가 크고 작은 것을 기준으로, 얼굴이 잘 생기고 못 생긴 것을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한다. 생명에 대한 편견 때문에 성형하다가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그래서 범어사등나무군락은 인간의 본성을 깨닫게 하는 참선 수행 공간이다. 중국 당나라 문언(文彦) 선사의 지적대로, 나무는 결코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누굴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각자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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