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IT업계 메이저인 시스코와 오라클의 서버 사업 진출을 두고 설왕설래다. 두 회사가 왜 서버 사업에 발을 들여놓는지 궁금해서다. 우선 진출장벽부터 만만치 않다. 서버시장에는 IBM, HP, 델 등 막강한 트리오가 버티고 있다. 게다가 서버 시장은 이른바 말하는 블루오션도 아니다. 일례로 작년 4분기 세계 서버 시장은 매출 기준으로 전년 대비 14% 감소했다. 출하량도 12%나 줄었다. 2007년에도 서버 시장은 전년보다 3.3% 감소한 533억달러에 머물렀다. 시스코와 오라클의 가세로 가뜩이나 치열한 서버 가격전쟁은 불을 뿜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양사의 서버사업 진출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시스코가 성장의 한계를 만만한(?) 서버로 돌파하려 한다.’ ‘오라클은 선의 서버보다 OS인 자바를 노렸다.’ ‘시스코와 오라클이 각각 핵심 제품인 라우터와 데이터베이스에 서버를 끼워팔기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해석들은 수익성을 최고의 가치로 숭상하는 시스코나 오라클의 경영 체질을 감안하면 썩 와닿지 않는다. 외려 선점업체인 IBM과 HP는 하드웨어보다는 고부가 컨설팅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인지 더 궁금해진다. 포스트 교토의정서 시대를 노린 장기적 포석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린서버를 생산하면 막대한 탄소배출권을 획득할 수 있다. 또 머지않아 탄소배출 의무할당량이 주어지면 그린서버 수요가 폭발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서버사업에 뛰어들자.’

이는 국내 대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에 앞다투어 뛰어드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소가 지금 당장 돈이 되지 않지만 탄소배출권을 획득할 수 있다. 탄소배출권을 확보해놓으면 언제 도래할지 모를 의무감축에 대응하기 쉽다. 신재생에너지 수요도 갈수록 늘어날 것이어서 장기적으로 사업성이 있다.’

온실가스 배출 1위국이면서도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교토의정서를 외면했던 미국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5형제를 자처하고 있다. 앨 고어 전 부통령은 환경보전의 전도사로, 미 IT업계는 그린IT의 선도자로, 오바마는 녹색뉴딜의 주도자로 나서고 있다. 그렇기에 오바마 정부의 녹색뉴딜을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이기는 미심쩍다.

미국은 브레턴우즈 체제로 수십년간 세계 경제질서를 지배해왔다. 그 브레턴우즈 체제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붕괴될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은 이 위기를 새로운 거대한 질서를 만들어낼 기회로 삼으려 하지 않을까. 장차 지금의 주식시장을 능가할 것이라는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이 바로 그것이다. 전 세계 탄소배출권거래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곳은 CLE PLC라는 지주회사다. 세계 최대인 유럽기후거래소(ECE), 시카고 기후거래소(CCE)를 보유하고 있다. CLE PLC는 시카고에 있는 재단이 설립을 주도했다. 오바마는 이 재단 이사회 멤버 활동한 바 있다. 대통령 당선에도 이 재단의 힘을 크게 입었다.

실제로 미국 상원은 ‘리버먼 워너 기후보안법’에서 제창된 탄소배출권거래제 의무화를 작년 6월 부결시켰지만 오바마정부는 새로운 기후 법안을 도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바마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의 IT업계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한 교토의정서는 1차 의무이행기간이 오는 2012년이면 종결된다. 2차 의무이행과 관련된 사항은 올해 12월 코펜하겐 당사국회의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벌써 미국과 한국 등 교토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의 참여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미국이 가입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 유럽에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을 욕심을 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미국이 그려가려는 질서의 밑그림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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