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의 내일을 바라보다
대학신문의 내일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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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1.0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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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대학신문이 위기에 봉착했다고 한다. 학우들의 정신을 깨워주는 역할을 해왔던 대학신문은, 이제 뒤따라 등장한 여러 타 언론들과 함께 뒤섞여 그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거대한 딜레마에 봉착했다. 오랜 세월 덕성인과 함께해 온 덕성여대신문에서 창간 45주년을 맞아 대학신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일을 조망해본다.  

 

▲ 신하영한국대학신문 기자 요즘 대학생들은 할 일이 많다. 학점에도 신경 써야 하고, 취업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졸업 후 취업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스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학신문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고 문득 요즘 대학생들의 이러한 처지가 떠올랐다. 대학신문도 요즘 대학생들이 처한 현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실시간으로 정보가 유통되는 외적 환경 속에서도 신문은 그 맥을 이어가야 한다. 내적으로는 기자인력을 확보하는 게 난제다. 바쁜 대학생들 중 몇몇은 학생기자에 지원토록 하고, 이들을 기자로 키워내야 한다. 본래 대학신문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조화를 이루는 신문이다. 대학 내에서 창출된 지식과 기술이 소개되고, 대학의 지성이 시대정신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대학신문의 정체성은 수많은 매체들과 구별되는 경쟁력이다. 때문에 대내외적인 환경이 어려워도 이러한 ‘정체성’은 유지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과거 권위주의 정부시절엔 대학신문이 사회의 ‘숨통’ 역할을 했다. ‘관제언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언론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많았을 때다. 대학신문의 교내 기사와 교외(사회) 기사의 비중은 이런 사회적 환경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으로 언론이 통제되면 대학신문이 사회의 ‘숨통’ 역할을 하고, 반면 언론의 자유가 만개하면 ‘사회’보다는 ‘교내’ 문제에 좀 더 치중하게 된다. 지금의 사회적 환경도 언론에 호의적이지 않다. 일부 방송사 사장 자리에 권력과 가까운 낙하산 인사를 무리하게 앉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대학생과 밀접한 사회 이슈 중에는 치솟는 등록금 때문에 대학생이 자살하는 문제가 있다. 정부가 친서민 정책으로 제시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는 오히려 청년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개연성이 크다. 이런 환경에서 대학신문이 사회문제를 소홀히 취급할 수는 없다. 문제는 ‘요즘 대학생’들이 과거에 비해 사회문제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스펙’을 쌓기에도 바쁜 때에 사회문제에 관심을 돌릴 겨를이 없다. 대기업이나 공무원 등 소위 ‘괜찮은 일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매년 극소수로 한정된다. 이런 환경에서도 대학신문은 학우들에게 가깝게 다가서야 한다. 독자에게 읽히지 않는 신문은 무의미하다. 때문에 복잡한 사회문제를 쉽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대학생의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의제를 설정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주간이나 격주발행이기 때문에 ‘속보성’보다는 심층보도에 힘쓰면서, 가능한 쉽게 써야 한다. 기사를 쉽게 쓰려면 문제를 꿰뚫어 봐야 한다.이런 과정은 순전히 기자들의 노고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사회문제를 꿰뚫어 보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기자는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어도 된다. 단지 복잡한 문제를 쉽게 전달할 전문가를 취재원으로 갖고 있으면 되고, 이런 취재원은 발로 뛰면서 얻어진다. 대학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대학의 정책과 행정도 복잡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가능한 한 쉽게 전달해야 할 책임도 대학신문에 있다. 독자인 학우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사안을 취재, 이를 분석하고 쉽게 전달함으로써 ‘읽히는 신문’으로 만들어야 한다. 요즘 대학신문을 둘러싼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 지고 있다. 교내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주간교수나 본부측과 마찰을 빚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몇몇 대학에선 조직개편을 통해 대학신문을 대외협력처나 홍보팀 소속으로 바꿔 비판기능의 약화를 노리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도 대학신문은 사회문제를 올바로 전달하고, 학내 비판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 때문에 대학경영과 신문제작을 분리, 언론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부 대학에서 일어나는 조직개편이 언제나 ‘강 건너의 일’이 될 수는 없다. 제도적으로도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미래를 위해선 대학신문의 ‘기풍’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인적집단의 공통적 기질’을 올바로 세우고, 후대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풍이 올바로 서면 제도나 시스템보다도 강한 힘을 갖는다. 그것이 현재 만들고 있는 신문을 충실히 만들면서도, 후배기자를 키우는 일에도 힘써야 하는 이유다.신하영 한국대학신문 기자
▲ 권경우 문화평론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대학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변화의 핵심은 ‘대학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맞닿아 있다. 재단을 비롯한 대학 당국과 교수와 학생을 비롯한 대학 구성원 사이에는 두 가지 분명한 시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나는 대학 발전을 내세우면서 기업(자본) 친화적인 대학을 지향함으로써 대학교육의 목표 역시 취업과 기능인 양성에 두는 것이다. 다른 입장은 대학은 국가 혹은 사회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넓은 차원에서 교양인을 양성하는 기관으로서 취업과 같은 즉자적인 요구에 부응하기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교육, 즉 철학, 역사, 문학 등의 가치 교육도 겸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현재로서는 전자의 입장이 매우 우세한 상황이며, 후자의 주창자들은 이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대학언론, 특히 대학신문은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그 배경에는 대학신문의 역사적 정체성 형성 과정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1970년대를 거치면서, 특히 1980년대 5공화국 시기 대학신문은 대학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학생운동과 민주주의 등의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암울한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해 모든 기성 언론이 침묵하고 있을 때 대학언론은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친 것이다. 그러한 대학신문의 뿌리는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알게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최근 들어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그러한 변화는 뒤늦게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잡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대학신문은 위기에 빠져 있다. 일단 대학신문 기자의 지원자가 급감했다. 몇몇 대학신문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신문사에서는 ‘소수 정예’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임기 만료 이후에도 계속 일하고 있는 학생 기자를 여러 번 목격했다. 대학신문의 위기는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학점과 취업, 토익성적, 봉사, 해외연수, 인턴 등 다양한 스펙,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취업에 대한 부담은 더 이상 학생기자로 살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학교 홍보매체 리포터나 홍보도우미 등은 스펙을 중시하는 대학생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면서 인기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 대학신문은 이제 학교 홍보지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실제로 홍보지에게 밀리는 대학신문도 많다. 대학신문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전혀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대학신문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학신문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동체 의식은 사라지고 개인주의만 판치는 대학생들이 문제이고, 대학문화는 되살아나야 하며, 학생운동이 변해야 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정체성과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이 말은 당위에 가깝다. 당위만으로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까지 나타난 것으로 판단컨대, 대학신문의 대응 방식은 실패했다. 대학생의 정체성의 변화와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테크놀러지의 변화 등 그 어떤 것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대학신문의 존재감이 사라진 결정적인 이유이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독자인 대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중요한 정치사회적 발언도 무용지물이다. 이때 생각해보는 것이 ‘대중’의 문제이다. 대중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대중은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다. 대중이 진리는 아니지만, 대중이라는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대중은 곧 사실(fact)이다. 대학신문은 대학생과의 관계를 그런 관점에서 풀어가야 할 것이다.이제 대학신문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현재 대학사회의 모습과 대학생의 일상과 한국사회의 현실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현실을 통해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독자를 아우르는 ‘지향성’을 가져야 한다. 대중을 선도하거나 계몽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각각의 대학신문은 자신이 속한 개별 대학의 모습을 먼저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지향점이 사라진 시대에 대학신문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담론, 새로운 문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중요한 매체가 될 것이다. 권경우 문화평론가
▲ 신상현 성대신문 편집장 대학 언론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단순한 취업과 관련한 내용이 아닌 학사제도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학생자치활동에는 문제가 없는지 등에 대해 말이다. 대학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학우들과 학교 사이의 입과 귀가 되어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언론이 유일하게 학교를 견제할 수 있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필자는 적어도 자신이 속해있는 공간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보사 기자들 그리고 대학언론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 여기에 있다. 사실 대학언론은 여타 수많은 기성언론에 비해 비교적 풍족하면서도 자유로운 집필을 할 수 있다. 재정적인 자유로움은 물론이고 나름의 편집권도 보장돼있는 편이다(물론 이것이 전적인 사실은 아니다. 배포권이나 주간교수와의 마찰로 인한 문제는 각 학교마다 사정을 다르겠지만 점점 심화되고 있다. 필자가 다니는 학교 역시 예외는 없다). 그럼에도 대학언론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를 넘어서는, 한 단계 발전된 ‘무엇’이 필요하다.진실은 있되, 사실은 없다. 작은 사안을 다룰 때도 우리는 문장에 우선순위를 정해 작성하고, 때론 분량의 한계로 인해 담아내지 못하는 내용도 있다. 뿐만 아니라 기사를 작성할 때 기자의 주관이 들어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글이 진정한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취재가 아닌 앎에 대한 열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대학언론이 발전하기 위한 ‘무엇’이다. 그러나 대학언론에 몸담고 있는 지금의 사람들은 취재를 위한 취재를 한다. 단순히 기사에 필요한 현상만을 알아내기 위해서, 취재는 기사를 쓸 때만 하는 ‘과정’일 뿐이다. 과거와 다르게 대학 언론이 위기라고 불리는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이다. ‘앎’없이 쓰인 기사로는, 열정 없이 쓰인 기사만으로는 지금의 대학생들을 만족할 수 없다. 노력 없는 대학언론들이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날짜 지난 신문의 용도 가운데 하나는 깔개다. 신문기사는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좋은 기사는 100년 후에도 감동을 주는 기사다’라는 말이 있다. 노력과 열정으로 만들어진 감동적인 기사가 위기의 대학언론을 종결지을 수 있는 것이다. 열쇠는 당신의 손에 있다. 대학언론의 길을 걷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을뿐더러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시키기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기사가 ‘사실’이 아닌 ‘진실’이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면 ‘사실 같은’ 글이 될 수는 있다. 진실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찾아낼지, 찾아낸 진실을 얼마나 ‘사실화(事實化)’하는 지에 따라 대학 언론 성패는 달려있다. 신상현 성대신문 편집장
▲ 이영신 이대학보 편집국장 대학신문사 편집국장이라고 밝히면 항상 듣는 질문이 ‘대학신문이 위기인데,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대학보의 보도 이후 학교의 여러 불합리한 제도가 바뀌었고, 매주 월요일이면 학내 곳곳에서 이대학보를 읽는 학생들을 볼 수 있으며, 이대학보가 조금이라도 늦게 나오는 날에는 “이번 주에는 신문을 발행하지 않느냐”라는 전화가 걸려오기 때문이다.요즘 캠퍼스에서는 대학신문보다 더 현란한 사진과 다양한 콘텐츠로 무장한 매체들을 무료로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매주 월요일이면 학교 정문 신문 가판대에서 이대학보는 금방 동난다. 학생들이 이대학보를 집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대학보에는 다른 매체에서 볼 수 없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인 이화여대에 대한 소식이다. 그러나 대학내일, 코스모폴리탄 대학 판에는 이화여대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로스캐롤라이나 대학교수인 조크 로터러는 “지역 언론은 발행 부수가 5만 부 이하로,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며, 뉴스, 피처 기사, 스포츠, 광고 등에서 지역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신문이라”라고 정의한다. 나는 대학신문도 지역 언론 중 하나이며, 독자들에게 자신이 속한 대학의 공동체 의식을 확인시켜주고 소속감과 일체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80년대 학생들의 관심사가 민주화로 모였다면 오늘날 학생들의 관심사는 문화, 취업, 연애, 패션 등 다양하고 세분화됐다. 독자들의 관심사가 다양해진 요즘, 대학 신문은 어떻게 독자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을까? 대학신문은 학생들의 관심사를 다양하게 다루는 한편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대학신문이 정체성을 확보하려면 지역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대학보는 ‘이화’에 덕성여대신문은 ‘덕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학신문은 대학에서 발생하는 소식을 최대한 빠르고 심층적으로 독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 싶다면 그 사회적 거대담론과 독자들이 직접적으로 어떤 연관성이 있고, 어떤 영향을 받을지 연결고리를 찾아줘야 한다. 사회 주요이슈나 학내 문제점이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문제라고 여길 수 있도록 보도해야 한다. 자신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문제라고 판단되면 독자들은 그 문제를 다룬 기사에 흥미를 갖지 못한다.독자는 신문에 자신의 이야기, 친구 이야기가 나왔을 때 친근함을 느끼고 비로소 ‘내 신문’이라고 여긴다. 대학신문들은 소소하더라도 학내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뤄야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사소한 불편함이라도 그들의 입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학은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 문제들은 일반 매체들의 보기에 하찮아서 무시되곤 한다. 그러나 대학구성원에게 그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시급히 해결돼야 할 것들이다.나는 ‘저널리즘의 기본’ 관점에서 바라볼 때 대학신문의 전성기라고 여겨지던 80년대보다 오늘날 대학신문들이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일간지보다 발행부수가 적고 서툴고 초라하더라도 대학신문의 학내 영향력은 어느 매체보다 크다. 학생 기자들이 대학신문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세우고 독자들에게 충실해 진정한 풀뿌리 언론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영신 이대학보 편집국장
▲ 박연경 덕성여대신문 편집장 수습기자 딱지를 떼고 정기자가 되던 날, 선배가 물었다. “왜 신문사에 들어와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니?”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 결국 답을 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왜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지, 또 내가 학보사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답을 내지 못하고 덮어버린 지 1년, 어느새 난 편집장이라는 자리에 앉아있다. ‘대학언론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대학언론에 몸담고 있는 학생 기자들 사이에서는 흔히 나누는 이야기다. 하지만 기자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단순히 요즘의 대학언론의 위기라는 현상 그 자체가 아니다. 대학언론의 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그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하지 않는 대다수의 학생 기자들의 태도다. 물론 극심한 청년실업과 취업난, 미디어 매체의 급격한 발달 및 보급 등 대학언론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기자가 꼽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기자들의 문제의식 부족’이다. 최근에는 학보사 기자 활동경험 역시 ‘스펙 채우기’의 한 방법으로까지 이용되다 보니, 문제의식의 부재는 더욱 심각해 졌다. 취업과 스펙 만들기에만 정신이 팔린 요즘의 대학생들에게 대학언론의 역할이나 학보사 기자들의 역할 따위는 망각한 지 오래인 듯하다. 요즘의 대부분 대학 신문사 기자들은 기사 쓰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취재요, 취재보다 어려운 것이 기획회의요, 기획회의보다 어려운 것이 장기편집계획을 짜는 것이라 말한다. 이것 역시 기자들의 문제의식 부족에서 온다. 대학신문이 가진 고유의 역할과 성격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모두들 ‘지면 채우기’에만 급급하다. 대학언론의 위기를 지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냥’ 만들어진 신문은 그저 낭비에 불과한 ‘종이 쪼가리’일 뿐이다. 작은 사안을 한 가지 취재하더라도 기자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기사의 방향, 취재내용에 대해 고심하고 다방면으로 발로 뛰며 취재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학보사 기자의 역할이자 대학언론의 역할인 것이다. 대학언론에서 활동하는 기자는 평범할 수 없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짚어낼 수 있는 ‘매의 눈’을 가져야 하며, 취재를 할 때도 열을 알려주면 열 하나를 알아오는 열성을 가져야 한다. 이는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기자 스스로가 자신의 역할에 대한, 나아가 대학언론의 역할에 대한 책임과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박연경 덕성여대신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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