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문턱에서]

   
  최선미
  통역가·동부산대강사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이 피아노 앞에 앉아서 요즈음 유행하는 OST곡을 연주하고 있다. 피아노를 전공으로 하지 않기에 마냥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인 지 즐기는 듯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보인다. 초등학교 때부터 악기를 접한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피아노 외에도 바이얼린 이라던지 다른 악기들도 잘 접하는 것 같다.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어릴 적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고즈넉한 저녁 골목길 담장 너머로 희미하게 들리던 피아노 소리가 어린 나의 걸음을 몇 번씩이나 멈추게 하였으니 그 집 담장위에는 빨간 장미 넝쿨이 피어나 아름답게 들리던 피아노 소리와 어우러져 무척 행복하고 부유한 가정으로 느꼈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요즈음 아이들은 악기 하나쯤은 기본으로 다 배우고 다룰 수 있기에 피아노는 기본이 될 만큼 음악학원들이 많이 생겼고 각 가정마다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고 대중화된 악기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학년이 바뀔 때마다 “가정방문 조사” 란에 피아노 보유 실태를 체크하였으니 제법 값이 나가는 재산 목록으로 여겨졌었다.

쉰을 넘긴 어떤 분께서 시집 간 딸이 두고 간 피아노를 버리기는 아깝고 중고로 팔기엔 너무나 돈이 되지 않아 시간을 내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마음처럼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고 몸 따로 마음 따로 피아노가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느끼는 것이 한 번도 자신은 당신의 딸이 피아노를 배울 때 잘한다고 칭찬을 해 준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고 잘 할 것 같았는데 마음대로 잘 안되더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피아노를 전공으로 하던 딸아이를 한 번도 칭찬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하고 자질구레하게 잔소리만 많이 했던 것이 마음에 후회되었다는 그 분의 글을 읽고, 나 역시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울 생각도 하지 못했고 지금도 피아노를 배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나 역시 딸이 피아노를 잘 치는지 열심히 하는지 마음 한 구석에 관심은커녕 칭찬조차 별로 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남이 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은 곧잘 하기 쉬운 것 같다. 과정에 대해, 결과에 대해 쉽게 평가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의 일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데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칭찬에 인색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남에 대한 성토는 잘 하여 장점 보다는 단점이 잘 보이는 것이 인간이기에 성경에도 “남의 티는 보면서 자신이 들보는 알지 못하느냐” 라는 말과 더욱 남의 들보조차 빼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남의 잘못을 바르게 잡고자 한다는 말이다.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그 분도 자신의 딸이 얼마나 힘들게 피아노를 배웠을까 하고 느낄 수가 없었겠지만 그 분이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고 칠 수 있게 됨으로서 시집간 딸로부터 “잘치네~”라는 말 한마디에 위로를 얻었다는 그 분의 글은 한마디 칭찬으로 인해 더 노력하게 만들고 더 용기를 갖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나로서는 우리 딸과 그 분이 부럽기만 하다. 지금이라도 배우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하는 분이 계신다면 할 말이 없지만 무언가 시작한다는 것이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고 피아노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피아노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내 자신이 악기와는 도무지 친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이 쉰 살이 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책 내용 중에 꼭 쉰이 되기 전에 어떤 전공이든 어떤 학위든 나름대로의 목표는 이루어야 하고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글을 읽어 본 적이 있지만 나는 쉰 살이 되기 전에 이룬 것이 하나도 없으니 부끄러울 뿐이다.

요즈음은 나이가 들어서도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동사무소나 문화센터에 가면 오카리나 또는 하모니카 아코디언 . 장구 등 다양한 악기들을 무료로 배울 수 있다. 시작한다는 것이 멋진 일일 것이다. 용기를 내어 배움의 장소로 향하고 또한 타인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인정하고 잘 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여짐과 같이 비록 첫 걸음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점점 나아질 거라는 믿음과 용기를 갖고 포기하지 않고 달려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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