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천(吐天) 장종원의 동양학 산책]

불교의 인생무상 불교를 간단히 말한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간단히 말한다면 그 자체가 고(苦)이며, 그 고(苦)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苦)에서의 해방, 이것이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다. 고로부터의 해방이란 고가 완전히 소멸된 상태로, 현대적인 개념으로서는 최고의 행복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초기 불교에서는 인생은 무상하고 항상 죽음의 위기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결코 영원히 살지 못한다. 마음으로는 영원히 살고 싶지만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불과 백년을 조금 넘는 세월 밖에 살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인간이 십 년, 이십 년 살아간다고 하는 것도 결국은 십 년, 이십 년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 것 밖에 안 되는 유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짧은 시간과 순간적인 육체 가운데서 인간은 행복을 찾고 즐거움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무상(無常)한 존재이며 죽어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될 숙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무상을 특히 강하게 제시한 것은 이 자각 반성에 대한 능동적 반발의 힘으로 무한한 인간의 본성을 찾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결코 그러한 무상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자기 마음의 자성(自性)이 있기 때문에 이를 깨우쳐 주기 위해 이 무상고(無常苦)를 나타내고 있다.

무상은 모든 것이 계속 변하고 있다는데 그 뜻이 있다. 붓다는 출가의 원인으로 불교의 성립원리인 고(苦)의 인식도 이 무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무상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생멸(生滅)해 없어져가고 또 행복한 것들이 사라져가 고(苦)의 근본이 된다는 것이다. 또 무상은 윤회를 낳는다. 윤회는 천상,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육도(六途)를 돌며 생하는 것이지만 이 육도에 전생하며 윤회한다는 것은 곧 변멸하는 무상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무상의 참뜻은 이것만이 아니고 여기에 다시 자기 성찰의 반성이 자각을 갖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무사에서 고(苦)도, 윤회도 느껴야겠지만 변해 가는 그 가운데서 허망한 것도 느껴서 자기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집착의 가치는 변함없는 것에 있지 변해 가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시로 변해가는 나 자신을 ‘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떨리는 손으로 바늘구멍에 실을 꿸 수 없는 것처럼, 변화하는 것으로 변화하지 않는 것에 도달할 수는 없다. 헛된 망상과 자신을 일치시키지만 않는다면 진정한 자아를 별견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인연(因緣)에 의하여 잠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있을 수 없다. 인연에 의하여 생겨난 것은 언젠가는 인연이 다하게 될 것이고, 그 인연이 다하면 자연적으로 없어질 뿐이니, 여기에 아(我)가 있을 수 없다. ‘나’라는 것이 진실로 ‘나’가 아닌, 즉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동시에 ‘내 것’ ‘네 것’이라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 ‘나’가 없는데 어떻게 내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무소유를 강조하여 절대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말 것을 말한다. 인간이 무엇을 소유하여 내 것으로 한다고 하면, 그것은 마치 꿈속에서의 내가 어떤 것을 가지는 것과 같아서 꿈이 깨고 나면 가진 자도 없고 가진 것도 모두 허망하여 없듯이 아무런 쓸모가 없는 허사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여 결국에는 없어지는 것이다. 지위도 명예도 재산도 우리들의 생명까지도 결국에는 죽음에 빼앗겨 버린다. 그러한 무상한 것을 멀리하고 진실한 것을 찾아내야 한다. 불교는 그러한 진실한 것을 자기 안에서 찾아내어 그것을 실현해 갈 때에 인생에 있어서 삶의 가치를 인정한다. 또 거기에 인간의 참다운 행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철저히 자각하여 여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자기를 찾는 것이 된다. 그리하면 진정한 자아를 성취하여 나아갈 수 있다. 이 아(我)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아(假我)요, 다른 하나는 진아(眞我)이다. 무아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미혹되어 있는 것은 가아(假我)요, 무아의 이치를 깨달아 아(我)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진아(眞我)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이러한 진아를 깨닫기 위하여 끊임없이 정진한다.

이와 같이 진아를 확보하면 자기가 완성되고 마음의 화평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온갖 번뇌와 미혹으로부터 괴로움을 떨쳐 버릴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토천 장종원 선생
 

 

 

 

 

 

 

 

 

 

 

 

토천 장종원은 동양명리학자이자 경영학 박사로서 토천 행복연구원장으로 활동.

▲ 전 동의대학교 강사

▲ 원광디지털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 부경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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