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동 KNN 프로야구 캐스터

* 타고투저(打高投低) : 야구에서, 타력이 좋은 데 반해 투수력은 나쁜 상태. 
국어사전에 등재된 ‘타고투저’의 정의다. 이 말은 ‘신어’다. 새로 생긴 어휘라는 의미. 올 시즌 한국 프로야구의 흐름은 이 네 글자와 정확히 일맥상통한다.

물론 거인군단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타율 3할 7푼 7리의 4번 타자 히메네스를 선두로, 3할 5푼 2리의 2년 연속 최다안타왕 손아섭. 그리고 정훈과 박종윤, 문규현, 황재균까지 무려 6명이 타격 3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터지면 한 경기에 안타 20개씩은 쳐내는 롯데 타선이니 그야말로 굉장한 화력이다.

롯데 뿐 아니라 다른 팀들의 타자들도 올 해는 미친(?) 타격을 뽐내고 있는데, 3할 이상의 타율을 유지 중인 타자가 무려 35명이다. 두산 베어스는 무려 7명이 타율 3할을 넘기고 있다. 팀 타율은 무려 3할 1푼이다. 김현수의 타율이 아닌, 팀 타율이 말이다. 이쯤 되면 역대 최고의 ‘투고타저’ 시즌은 이미 예약한 상태. 이렇게 매일매일 홈런과 안타가 빵빵 터지던 5월의 마지막 날. 롯데는 엄청난, 그리고 수많은 기록을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남겼다.  5월 31일 토요일 오후 5시. 잠실야구장에는 26,000명의 만원 관중이 꽉 들어찼다. 올 시즌 최강 화력의 두 팀, 롯데와 두산의 8차전.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아무튼 이래저래 야구를 즐기기에 환상적인 날이었다.

양 팀의 선발투수는 유먼과 볼스테드. 괜찮은 외국인 투수들의 맞대결이기에 그 누구도 3시간 뒤의 경기 결과가 그렇게 나타나리라 예상하지 못 했다. 1회초부터 롯데의 타선은 폭발했다. 리드오프 정훈의 안타부터 전준우, 손아섭, 히메네스, 박종윤까지. 무려 5연속 안타. 황재균 건너뛰고 또 문규현 안타. 8명의 타자가 등장해 4점을 얻었다.

첫 투구를 위해 1회말에 마운드에 오른 유먼.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아, 오늘 선발이 유먼이었지!’ 그렇다. 유먼은 올 시즌 등판만 하면 팀 타선이 기본 10점 이상씩 지원해주고 있다. 역시나 그 징크스는 이날도 이어진 셈이었다. 볼스테드가 민망하리만큼, 유먼은 간단하게 두산의 1회말을 3자 범퇴로 막아냈다. 그리고 롯데의 타선은 2회부터 또 다시 차곡차곡 점수를 적립해나갔다.

2회 1점, 3회 3점, 그리고 이어진 4회초. 두산의 선발투수 볼스테드는 롯데의 타선을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었다. 4회부터는 젊은 투수 정대현이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롯데는 관용조차 없었다. 정대현이 등장하자마자 첫 타자 손아섭이 볼넷으로 출루했고, 히메네스의 2루타를 시작으로 상대의 실책까지 얻어내며 무려 7점을 쓸어 담았다. 4회초에 15대0. 이미 승부는 롯데 쪽으로 기울었다. 즐거운 토요일 오후에 두산의 야구를 즐기려던 서울팬들은 하나둘 조기 귀가하기 시작했다.

유먼은 그래도 정이 넘치는 남자였다. 5회말에 두산의 이원석에게 솔로 홈런 한 방을 서비스했다. 점수는 15대1. 롯데 타선은 6회초에 잠시 쉬더니 7회 3점, 8회 1점, 9회에 또 3점을 뽑았다. 결국 23대 1의 대승, 아니 지나친 압승이었다.

안타 수는 무려 29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한 경기 최다 안타 신기록을 경신했다. 팀은 선발 전원 안타와 타점을 동시에 기록했다. 문규현이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3회에 교체돼, 아쉽게 선발 전원 득점은 달성하지 못 했다. 하지만 이정도면 충분한 하루였다. 전광판에 숫자가 빽빽했다. 23과 29. 롯데 팬들은 환호했지만, 두산 팬들은 과음했다. 그리고 4회부터 사실 경기는 흥미를 잃었다. 신기록 작성은 축하할 일이지만, 경기 막판까지 긴장감을 주는 야구. 팬들의 귀가시각을 늦추는 야구. 이런 야구가 진정 팬들이 원하는 프로야구가 아닐까. 

극심한 ‘타고투저’의 시대를 살아가는 2014년의 야구팬들은 오늘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핸드볼이 아닌, 야구를 하길 바라지 않을지. 오늘은 또 어떤 팀이 20점을 뽑을지 걱정 반, 설렘 반과 함께 난 사직 야구장으로 출근하러 나선다.

저작권자 © NBN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