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문턱에서]

   
   정점숙 시인

몇 년 전 TV에서 방송한 인간극장이란 프로를 시청했던 생생한 기억, 아흔의 어르신, 쉰이 넘어 배운 한글, 서툴긴 하지만 마음에 와 닿는 시, 사물을 보며 감사하는 마음, 꽃 한 송이 하찮은 들풀에도 대화하며 살아가시는 그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행복이 혼자여서 가끔 외로움도 느끼지만 틈틈이 쓰신 글로 팔순에는 시집까지 내셨단다. 보는 순간 너무 닮고 싶은 어르신, 생각하니 조금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꽃을 좋아하고 대화하며 사는 것, 가만히 고백하면 초등학교 5, 6학년 때부터 노트 하나 숨겨 다니며 서툰 단어들을 나열한 것 같다. 중, 고등학교, 직장생활, 결혼 전까진 나름대로 시, 수필, 심지어 몇 장 안 되었지만, 소설까지도 흉내 내며 혼자만의 꿈을 펼쳤었다. 지금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내 속의 하잘 것 없는 보물같은 문체들,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에 습작을 한다는 것 또한 너무도 먼 거리에 있었다.
조금은 젊은 나이기에 작은 희망 안고 서툴지만 어르신의 인생사 큰 사랑 따르는 마음하나, 지는 해에 비끼는 저녁놀 벗 삼아 텅 빈 가슴에 담아 본다. 높은 연세에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좋아하는 농사일을 핑계 삼아 시골로 내려가신다. 하지만 그 자식들 또한 효심이 지극하였다. 짬짬이 내려가 정성으로 노모를 돌보며 애쓰는 모습이 참 귀하게 비췄다. 지금도 시골 어르신이 계시던 소담한 농가가 또렷이 생각난다. TV에서 뵌 어르신의 연세쯤, 그때까지가 아니라도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가슴을 뛰게 하고 환상을 넘어서는 삶이 나의 것이 될 수있을까? 그렇다면 작은 생이지만 잘 살았다고 할 수 있겠지!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하여 굳어가는 몸을 게으름이란 놈이 접근하지 못하게 운동과 함께 초라한 글 작업실에 어렵게 앉는다. 내 속에는 세상 넓은 이야깃거리가 없다. 어르신을 뵐때 쉰을 넘어 한글을 배웠고 타고난 감성에 순수한 마음 밭이 시가 되고 많은 사람의 빛이 되지 않았던가! 인생은 누구도 한 치 앞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신만이 그 길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믿음으로 행복할 수 있고 또 기쁨에 감사할 수 있다. 설레며 기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그런 것,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왼손 하나로 자판을 두들겨 간다. 형편없는 글을 쓰기도, 때론 그럴싸한 글을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인생의 길을 돌아볼 때 중년을 살아온 길에 통분하기도 또 달래기도 한다. 이전에도 어르신을 잠깐 뵌 듯하다. 우선 그 연세에 글을 쓰신다는 것, 너무 열심히 사시는 꾸밈없는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존경하는 어르신, “내 눈에 비친 그대가 마냥 좋습니다.” 작은 삶이지만 감사하며 한 송이 꽃에도 사랑을 담은 대화를, 살아 있는 마지막까지 넉넉하고 진솔한 가슴으로 이룰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어 본다. 꽃을 사랑하며 새싹 하나에도 탄성을 지르는 지금 같은 마음, 시야속 사물들을 더 사랑하며 좋은 생각을 시심으로 그려가고 싶다. 배움은 적지만 어르신 모습 따라 자연의 순리대로 인간의 이치대로 열심히 살아 아름다운 글, 마음의 진실을 쓰는 사람, 그래서 언젠가 어르신처럼 다른 이의 눈에 마냥 좋은 사람으로 비췄으면 정말 좋겠다. 새싹이 움트는 소리처럼 소박한 마음 하나 있다면 이 세상 살기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능력과 교훈 그리고 믿음 되시는 사랑과 감사의 당신이 계시고 삶에 보배 같은 어르신이 계셔서 남은 생은 너무 행복할 것 같다. 햇살이 청명하여 마음은 창을 넘어 세상 끝까지 날아갈 것 만 같은데 베란다에 기대어 고작 가슴에 하늘을 담고서 화사한 미소만 날린다. 마음이 넉넉한세상이 되고 어르신의 마음 밭, 귀한 글밭에서도 또 삶에서도 향기가 피어나듯 알뜰한 한 여름향이 우리 안으로 퍼져 나가길 바란다.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핑계일 뿐. 어르신께서 늦게 배운 글을 순수함이란 문체에 옮겨 놓듯, 난 컴퓨터에 변화무쌍한 몸의 고통을 낱낱이 털어 놓고 싶었는데, 막상 잊고 있었던 문학의 조각들이 가슴을 들썩이고 있음을 알았고 아파트 앞 푸른 바다와 작은 숲 언덕을 통하여 가슴을 타고 살랑이며 흐르는 기분 좋은 바람은 나를 작은 시심으로 불타오르게 하였다. 앞으로 가장 행복한 맘으로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리며 그것들을 나만의 글로 탄생시켜 나갈 수 있었으면 너무 좋겠다. 살아가면서, 살아 있는 동안 존경하는 어르신 닮아 살면서 세상을 두루 사랑하고 아끼며 사랑을 전하고 싶은 것이 지금의 작은 마음 소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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