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문턱에서]

   
 박선미
 메디팜 민제약구 대표약사

토요일 저녁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가창력 있는 가수들이 지난 히트곡을 리메이크하여 경연하는 프로그램인데, 몇 주 전 토요일은 웬 낯선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사가 주는 의미에 괜히 마음이 찡해져 밥을 먹다가 TV 앞으로 자리를 고쳐 앉았다. SG 워너비의 김진호가 가족사진이라는 자작곡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의/설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딸이 되어서/이곳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아빠를 닮아있네/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가족사진 속에 미소 띈 젊은 우리엄마/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나를 꽃 피우기 위해/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내가 깨끗이 모아서/당신의 웃음 꽃 피우길/나를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그을린 그 시간들을/내가 깨끗이 모아서/당신의 웃음 꽃 피우길/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피우길 피우길

가족관계도 목적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요즘 자주 쓸쓸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얼마 전 친하게 지내는 옷가게 를 하는 언니의 집에 놀러 갔더니 그 언니가 울고 있었다. 몇 달 전 결혼한 아들 때문이란다. “세월호 사건 후로 옷 장사가 잘 안 되서 아들에게 딸 대학 등록금을 부탁했었어. 갓 결혼한 아들에게 돈 말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지만, 서울대 나와 좋은 직장 다니는 아들 두고 친구들한테 돈 부탁할 수는 없잖아. 추석 때 온 며느리와 아들이 그 문제로 방에서 다투는 걸 보니 가슴이 미어지더라. 시부모도 있는데서 보란 듯이 그러는 게 너무 괘씸하기도 해서 좀 야단을 쳤어. 그랬더니 가방을 싸서 나가 버리는 거야. 아들도 아무 말 없이 따라 나가더니 추석이 지나도록 전화 한통이 없었어. 괘씸하지만 자식이랑 그렇게 지낼 수 없어서 아들 회사 근처로 찾아가서 전화를 했어. 아들에게 변명이라도 듣고 싶었지.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커피숍 사장 핸드폰을 빌려 전화를 해봤어. 전화를 받더라고.. 엄마를 피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나더라. 마지못해 나온 아들에게 사업에 실패한 아빠를 대신해서 옷가게하며 빚 갚고 생활하느라 힘들었노라 하소연을 했어. 학자금 대출 안 받게 하려고 죽을힘을 다해 절약했고, 다른 애들처럼 해외여행이라도 한 번 보내주려고 옷장사하면서도 한 철에 옷 한 벌 사 입지 않았다고.. 뜬금없이 아들이 아빠가 너무 싫다고 하더라. 자기 분수도 모르고 왜 사업을 해서 모든 식구들을 힘들게 하냐고 하더구나. 엄마는 보겠지만 아빠는 죽을 때까지 보고 싶지 않다고 하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엄마도 보고 싶지 않은 눈치야. 더 이상은 부모에게 돈을 해줄 수 없다고 매몰차게 말하더구나. 부모도 돈이 없으니 귀찮은 존재구나 생각하니 서글퍼졌어. 자식에게 떳떳한 부모가 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서울대학 들어갔을 때 온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기뻤고, 누구보다 자랑스러웠던 아들이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세월이 흘러 어느새 젊음이 기울어 갈 어느 외로운 날, 우연히 꺼내든 사진첩 속의 빛바랜 가족사진을 꺼내들면 알게 될 것이다. 자식을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었던 부모의 날들을, 그리고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이렇게 꽃같이 젊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느 새 사진 속 아빠를 닮아가고 있을 때쯤이면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철이 들기를, 그래서 부모의 웃음 꽃 피울 수 있기를...

저작권자 © NBN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