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를 떠올릴 때 도쿄타워와 도쿄타워를 둘러싼 빽빽한 빌딩 숲이 먼저 눈앞에 그려지는 건 그동안 일드를 너무 많이 봤거나 지금까지 갔던 3번의 도쿄 여행에서 어마어마한 도시의 규모가 각인이 된 탓이겠지요. 하지만 지난 4월 4번째 도쿄여행을 다녀온 후 제가 떠올리는 도쿄의 모습은 아담하고 유니크한데다 옛스럽고 유유자적한 그림으로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도쿄의 풍경을 보여준 도쿄의 네즈(根津)라는 동네를 소개합니다.

우에노(上野)와 일본의 최고 명문대 도쿄대(東京大)와 가까운 네즈는 센다기와도 붙어있고 걷다보면 여기가 거긴지, 거기가 여긴지 오묘한 느낌의 넓고도 좁은 동네입니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이곳이 지금까지 있던 같은 도쿄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적하면서 조용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인들도 지도를 손에 들고 구경을 하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눈에 띄는 이색 풍경을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은 유명하진 않아도 알음알음 일부러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고 합니다.

네즈에서 일단 가장 유명한 곳은 네즈진자(根津神社)입니다.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서 하나미(花見)를 즐기러 가는 명소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제가 찾았을 때는 벚꽃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다행히 벚꽃엔딩의 아쉬움을 달래줄 철쭉 마쯔리(일본 전통 축제)가 네즈진자에서 시작되고 있어 색색의 철쭉이 피는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네즈진자의 건물은 에도 시대 건축물로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규모만큼이나 화려하기도 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 천 년 전으로 순간 이동한 듯한 느낌을 주는 진자의 회랑도 멋스러웠는데, 우리나라 문화재도 마찬가지지만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건축물이 주는 느낌은 고혹적입니다. 네즈진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붉은 색의 도리(鳥居)였습니다. 터널처럼 만들어진 도리 사잇길을 걸어가니 신기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색다른 기분이 들더군요. 도리 하나하나마다 담긴 기원 하나하나 모두 이루어지길 바라며 저도 그 길을 걸었습니다.

네즈진자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는 예쁜 헌책방이 있어서 한참을 서서 구경했는데요.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을 자주 가고 그 분위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곳의 헌책방은 마치 카페처럼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집 근처에 있다면 매일 드나들고 싶은 곳이었답니다. 예쁜 헌책방처럼 네즈의 골목에는 카페며, 공방이며, 미용실까지 아기자기하고 개성 있게 잘 꾸며져 있어 골목 구경마저도 흥미로웠습니다.

대도시 도쿄에서 얼마 남지 않은 재래시장 중의 한 곳인 야나카긴자(谷中ぎんざ)는 고양이마을로 유명한데, 시장 곳곳에서 고양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간판 옆에도 길가에도 진짜 고양이인가 착각할 만한 고양이 모형들이 숨어있고, 고양이 모양의 빵이며 간식거리가 즐비하며 각양각색의 소품 또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재래시장이니 볼 수 있는 생활용품이며 먹거리도 지천인데, 사쿠라철을 맞아 팔고 있는 한정 제품들도 구경할 수 있었답니다.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야나카긴자의 명소 유야케단단(夕だんだん)에서는 고양이마을에 걸맞은 유유자적하는 진짜 고양이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사람들 손길에 익숙해져 귀찮은 티를 많이 내긴 했어도 도도한 고양이의 자태를 한참이나 구경했답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진짜 고양이도 만날 수 있고 고양이와 관련된 예쁜 가게도 구경하고 쇼핑과 간식까지 즐길 수 있는 재밌는 여행지가 될 것 같습니다.

유야케단단에서 석양을 즐길 수도 있지만 5분 거리의 닛포리역 일몰도 유명하다고 해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넘어가는 해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흐린 하늘 때문에 아쉽게 이날 붉은 노을은 보지 못했지만 철길 너머 해가 지는 풍경이 충분히 아름다워서 한참을 바라보았답니다. 어느 드라마나 광고 속에서 본 듯한 그 아늑하고 평화로운 풍경에 발길을 돌리기가 아쉬워 저는 대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오후 내내 한참을 걸었는데도 네즈의 산책길은 눈과 마음이 편안해서였는지 피곤하다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도쿄산책을 즐기고 색다른 도쿄의 풍경을 만날 수 있었던 그 오후와 골목을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살포시 미소가 그려지기도 합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색다른 경험이 될 네즈, 도쿄 여행 가실 때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코드 안나(강정미 블로거) http://heyuanna.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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